풀린돈 갑자기 죄니 탈|통화긴축 싸고 정부-업계 엇갈린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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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꼭 필요한 만큼도 내주지 않고 갑작스레 돈을 거둬 들여가고 만 있다. -시중에 풀려있는 돈은 아직도 충분한데 그돈이 엉뚱한 곳에 가서 잘못 돌고있을뿐이다. 최근의 통화긴축을 놓고 정부와 재계의 인식이 전혀 다르고 처방도 팽팽한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기업쪽에서는 잔뜩 달구었다가 갑자기 찬물에 식히는 것과 같은 급격한 통화긴축이 기업의 설비투자를 위한 자금수요까지도 외면해 버림으로써 모처럼 일기시작한 경기회복세를 꺾고 앞으로 자금난을 불러올것이라는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고있다.

<긴축이냐 아니냐>
그러나 정부쪽에서는 올들어 적자폭이 늘어난 국제수지방어와 물가안정을 위해서, 또한 소비에 치우친 비정상적인 경기과열을 막기위해서 통화긴축은 계속되어야하며 자금이 부족하면 부동산에 감겨있는 자금을 끌어내 쓰면 될것이 아니냐고 주장하고있다.
양쪽의 주장이 서로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것이 사실이지만 한가지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것이 있기는 있다.
바로 지난해에 너무 많은 돈이 풀렸다는 것이다.
지난해 연말의 총통화(M2) 증가율은 평균잔액 기준으로 1년전에 비해 30·8%가 늘어났다. 통화(M1)는 무려 51%가 늘었다.
한햇동안에 무려 4조2천3백66억원규모의 총통화가 는 것이다.
81년 한햇동안 새로 공급된 총통화가 3조1천3백66억원이었고 80년에는 2조6천5백67억원이었던것과 비교하면 누가보아도 엄청난 돈이 풀린것에 틀림없다.

<작년에 너무풀려>
작년상반기까지만해도 돈줄을 잘 죄다가 이-장사건이 터지고 나서 정신없이 돈을 풀었다. 작년하반기엔 어떻게나 돈을 풀었던지 은행더러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쓰라고 독려하기까지했다.
때문에 6월만해도 연율13%선에 머물던 통화(M1)증가율이 7월엔 37%로 뛰어오르고 8월 43·8%, 9월 69·0%로 급격히 올라갔다. 10월들어 다시 고개를 숙였으나 한번 풀린돈은 좀체로 줄지않아 12월에 45·6%의 높은수준을 유지했다. 금년들어 긴축을 한다해도 47∼35%선을 유지하고있다. 77년의 통화팽창때와 비슷한 패턴이다. 이것이 작년과 금년의 부동산투기소동의 큰 원인이됐다.
정부는 이렇게 풀린돈이 많으니 좀 세게줄여도 별지장이없다는 것이고 기업측에선 풀때는 급하게 물어놓고 줄일땐 갑자기 줄이니 그충격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기업이 적응할수있게 점진적으로, 또 일관성있게 하라는것이다.
총통화증가율을 보더라도 작년 상반기의 28%선에서 7월에 30%선에 올라서고 그것이 연말까지 계속되다가 최근들어 21%선으로 떨어졌다.

<올증가율 15%책정>
정부가 올 연말 총통화 증가율을 15%로 일단 잡아놓은것은 올해의 GNP 성장률 목표 7·5%, 소비자 물가상승률 3∼4%를 놓고본다면 플러스알파를 감안하더라도 비현실적으로 낮은 수준이 아니다.
그렇다면 연말에가서 이정도의 총통화증가율을 달성하려면 올들어 1월중 25·9%, 2월중 25·4%, 3월중 23·9%, 4월중 23·4%, 5월중 21·7%와 같이 총통화증가율(전년 동기비)을 줄여온것은 결코 「급격한」 통화긴축이 아니라고 정부는 강조한다.
또한 15%의 증가폭 안에서 허용된 올해의 총통화 공급량 2조9천8백56억원 가운데 1∼5월동안에 풀려나간 총통화는 6천31억원으로 한달평균 1천2백억원꼴이다. 그렇다면 남은 6∼12월중에는 한달 평균 3천4백억원꼴로 모두2조3천8백25억원을 풀어놓을수있는 여유가 있으므로 기업의 자금사정은 비록 자금수요가 하반기에 몰려있다 하더라도 결코 어려워지지않을것이라는 계산도 가능하다.
시중의 어음부도율도 아직은 월평균 0·05% 이하의 수준에 머물러있고(6월1∼10일의 어음부도율은 0·04%) 실제로 올들어 5월까지 새로 풀려나간 민간신용은 모두 1조8천1백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천2백37억원이 늘였고 특히 이중 일반금융은 8천8백46억원으로 지난해보다 2천7백5억원이 늘었다. 다만 정부에서 국채발행·세금등으로 다시 빨아들여간 돈은 1∼5월동안 모두 3천6백83억원으로 지난해보다 2천3백83억원이나 늘었다.

<일반금융은 더늘어>
기업측의 자금난 걱정을 통화당국이 아직은 큰 걱정없는 「위기의식」으로 보고있는것도 바로 위와같은 여러가지 금융지표들을 토대로 한 것이다.
그러나 통화당국의 분석대로 이와같은 지표들의 범위내에서 풀려나가고 있는 「충분한」돈들이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의 자금수요를 제때 제곳에서 충족시켜주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당국의 표현대로 돈이 잘못돌고있는것은 사실이다.

<돈흐름 더 뒤틀려>
그러나 미처 돈의 흐름이 바로잡히기도 전에 총량규제의 칼을 뽑아드는 금융긴측은 돈의 흐름을 더욱 더 틀어지게 해 결국 은행과 중소기업에 크나큰 긴축의 고통을 강요할 뿐이다. 대기업돈줄을 줄이면 그 영향은 중소기업으로 간다.
최근의 실례를 보자.

<단자통해 끌어내>
대기업에 대한 은행의 문이 닫혀버림과 함께 부동산등에 잠겨있는 자금을 끌어내기위해 사채발행, CP(신종기업어음)발행 한도등을 같이 줄여버리자 단자사·종금사에대한 대기업의 대출요구는 급격히 늘어 지난15일 현재 단자·종금의 총여신 잔액은 5조1천4백98억원으로 지난 1월말에 비해 6천5백87억원이 늘었다.
이같은 왕성한 자금수요를 자체의 수신으로 충당하지 못한 단자사들은 결국 높은 금리를 물면서 은행의 차월한도를 넘기고 돈을 끌어다 거래 기업에 대출해주는 일이 흔해졌다. 이달 들어서만도 단자사들이 은행으로부터 한도를 넘겨 끌어다 쓴 돈은 약 2백억원이 넘는다.
결국 은행문은 닫혔다지만 대기업은 단자사를 통해 더 높은 금리를 주는 은행돈을 끌어내고는 셈이다.
한편 금융긴축과 함께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은 계속 각별한 신경을 써서 배려를 해주고 있다지만 중소기협중앙회의 조사에 의하면 실제로 지난 1·4분기중 중소기업들의 자금사정은 더욱 나빠져 사채를 쓰는 기업도 늘고 사채의 이율도 월0·1∼0·5%씩 올랐다.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기관의 대출이 계수상으로는 늘고있지만 이것이 골고루 배분되지는 못하고 반면 대기업의 어음결제 기간이 90일이상으로 길어져 중소기업의 운전자금 조달에 큰 타격을 주고 있는것이다.

<은행예금 안늘어>
은행은 은행대로 대출을 줄여나가면서도 예금이 늘지않아 콜자금을 끌어다쓰는등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유휴자금이 제대로 돌아 은행으로 들어와주지 않는것이다.
금리도 낮은데다 더우기 총통화를 줄여가는 상황이니 은행예금의 증가율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업들이 통화긴축속의 자금난을 걱정하는것은 바로 돈의 흐름이 바로 잡히지않은 상황에서 부분적으로 겪는 자금의 경색이라 할수 있다.
문제는 총량을 무턱대고 줄여나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자금의 흐름을 바로잡는 정책이 함께 추진되어야한다.
돈이 부동산으로 흐르는것도 막아야하고 남은 돈의 대부분이 은행으로 되들아 오도록 유도해야하며 사치성 소비투자는 자제하도록하는등 총통화 이의의 「긴축」 정책이 마련되어야 통화와 긴축이 부작용없이 그 효과를 거둘수있다.
이런뜻에서 자금의 양인 총통화만이 아니고 자금의 값인 금리도 다시 한번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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