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이 감독 밑에서 5년 스타일요? 정반대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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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유키사다 이사오(行定勳.37) 감독은 현재 일본 최고의 흥행 감독이자 멜러 영화의 '대부'로 꼽힌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지난해 일본에서 660만 명의 관객을 동원, 일본 영화사상 흥행 6위(애니메이션 제외)에 올랐다. 다이쇼(大正.1912~26) 시대를 배경으로 남녀 간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신작 '봄의 눈'을 들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그를 9일 해운대에서 만났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은 신작 "봄의 눈"(위 사진)에서 귀족 출신인 기요아키와 사토코의 비극적인 사랑을 쌓이지 않고 감쪽같이 사라지는 봄날의 눈에 빗댔다. 송봉근 기자

그는 기자에게 "부산에선 한국 영화의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진다. 정말 부럽다"고 말문을 꺼냈다.

5년 전 처음 부산영화제를 찾았을 때, 그는 거의 '무명'이었다. 그는 "영화 '쉬리'이후 한국 영화계에 굉장한 활기가 도는 것을 느꼈다"라며 "그때는 일본 관객들도 일본 영화를 외면하던 시절"이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스타 감독이 된 지금도 한국 영화계가 부럽긴 마찬가지다. "부산영화제는 이제 명실공히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가 됐어요. 어젯밤 영화인들이 모이는 파티에서도 실감했죠. 한국은 감독과 배우, 제작자 사이에 강한 유대 관계와 에너지가 흘러요. 일본도 한때 촬영소에 그런 분위기가 감돌 때가 있었죠."

그는 무려 10년간 영화판에서 조감독 생활을 했다. 그 중 5년은 '러브 레터'로 유명한 이와이 슌지(岩井俊二)감독 밑에서 일했다. 그래서 '러브 레터'는 물론 '4월 이야기''스왈로테일 버터플라이' 등 이와이 감독의 대표작에는 그의 손때가 묻어 있다. 그리고 이제 두 사람은 일본 멜러 영화의 양대 산맥이 됐다. 그러나 유키사다 감독은 "스타일은 오히려 대조적"이라고 말한다.

"방향이 다르죠. 이와이 감독은 세계를 응축해 자신의 내면으로 끌어들이고, 저는 '나'를 깨고 밖으로 나가려 합니다."

고개를 갸우뚱했더니 예를 들어주었다. "이와이 감독은 직접 시나리오를 씁니다. 자기 이야기를 하죠. 한동안 저도 그런 방식을 따랐습니다. 그러다 한계를 느꼈어요. 갈수록 내 속에 갇히는 기분이었죠."

자신의 이야기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외부에 눈을 돌렸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처럼 원작 소설이 따로 있는 작품을 영화화했다. "덕분에 제 자신의 영토를 더욱 확장할 수 있었어요. 이젠 제 이야기를 할 때가 됐다고 봐요."

그는 한국 영화에도 남다른 관심을 표시했다. 특히 이장호 감독의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1987)를 꼽았다. "가장 먼저 좋아하게 된 한국 영화입니다. '나도 꼭 저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죠. 그런 영향이 이번 영화 '봄의 눈'에도 녹아 있습니다." 이외에도 허진호, 김지운, 김기덕 감독의 작품에 애정이 많았다. "어제 김기덕 감독의 '활'을 봤어요. 그것만으로도 한국 영화판이 얼마나 다양하고 자유로운지 느껴지더군요."

부산=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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