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새지도(14)경제 4단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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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각 경제단체의 장은 곧잘 재계의 「공복」에 비유된다.
어느 누구든 경제단체의 장으로 선임되면 회원사들의 권익보호와 지위향상을 위해 힘쓸 것을 첫째로 다짐한다.
그러나 각경제단체장들은 업계의 입장에만 서 있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정부쪽을 향해 업계의 의사를 전달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시키려고 노력하는 만큼 때로는 당국의 뜻을 업계에 납득시키기도 하고 공식적인 행사도 주관해야 한다.

<눈코뜰새 없이 바빠>
요즘 같으면 각 기업체와 정화운동도 책임을 지고 추진해 나가야하고 경제홍보도 상당한 부분을 떠 맡아야 한다. 또 정부차원에서는 여러가지로 곤란한 대외적인 경협관계 일은 도맡아 놓고 각 경제단체장들의 차지다.
대한상의·전경련·무협·중소기협중앙회등 경제4단체중 전경련을 제외한 각 단체의 장들이 실질적으로 위로부터 지명되어 내려오거나 또는 당국의 사전 양해가 있어야 선출 될 수 있는등 관의 입김이 강한 것은 바로 이 같은 막중한 책무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각 경제단체장들은 정부의 긴축이 강화되면 기업의 자금난을 고위당국자에게 실감 있게 전달해야 하며 세금공세가 퍼부어지면 조세마찰의 폐단을 대외적으로 지적하고 나서야 한다. 업계의 신임을 받지 못하면 일을 해나갈 수가 없다.
따라서 어느 한쪽의 입장에 일방적으로 서 있을 수 없고 쌍방의 조정역할을 해나가야 하는 각 경제단체장들은 눈코 뜰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낸다.
현재 각 경제단체의 장들은 대부분 10·26이후 정국이 바뀌면서 새로 선임돼 경제계의 분위기를 일신한「새 얼굴」들이다. 이를테면 제5공학국 출범 이 후 재계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해온 사람들이다.

<재계의 새 흐름주도>
정수창 대한상의회장이 80년9월 전임 김영선회장의 뒤를 이어 10대 대한상의회장이 됐고 유기정 중소기협중앙회장도 80년9월 취임했다.
신병현 무협회장은 이보다 뒤인 지난해 2월 무협을 맡았고 정주영 전경련회장만은 지난 77년부터 4대째 회장직을 연임하고 있다.
이들 4단체장들이 일을 해나가는 스타일에는 각자의 개성이 잘 나타난다.
대한상의 정수창회장은 오랜 전문경영인의 생활속에서 몸에 밴 공과 사의 구별이 매우 엄격하며 더 할수 없이 꼼꼼하다.

<엄격한 공사의 구별>
정회장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나 그의 개인비서는 모두 그가 회장으로 있는 동양맥주(두산그룹)의 경비로 운영될 정도다.
그러면서도 지난해 상의회관 신축공사 입찰에 두산계열의 동산토건이 응찰하자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며 물러설 것을 종용, 입찰에서 제외시킬 정도로 신경을 쓴다.
상의의 인사와 예산집행도 규율을 세웠다.
정회장은 평소 『전문경영인으로서 상의회장이 됐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말하는등 별로 자리에 연연해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정회장은 검소한 사생활과 청탁받은 원고는 직접 쓰는 것으로 이름나 있다.
국제사회에서도 널리 알려져 지난해 한국기업인으로선 처음으로 국제상공회의소(ICC)의 집행위원이 됐다.

<합리적인사고·처신>
신병현무협회장은 일을 크게 벌이거나 또는 이를 크게 알리거나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일례로 지난해 말 무협임원들이 모두 참석한 어느 대외적인 모임에서 무협이 한햇동안에 대정부 건의를 통해 끌어낸 성과들을 한 임원이 자랑스레 주욱 나열하고 나자 신회장은『그 같은 일은 무협이 건의를 하지 않았어도 다 이루어졌을 일이지 결코 무협이 잘해서 된 일들이 아니다』라며 정색을 하고 지적해 좌중을 무색케 한일이 있다.
신회장의 이 같은 성격은 한은총재·부총리등을 거치면서 일관해온 것으로 그는 지금도 자신의 소신과 논리에 따라서만 일을 해가는「학자풍 무협회장」인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성격 때문에 신회장은 대외적으로 「힘센 회장」은 못된다. 또 힘센회장을 원하지도 않는다. 공직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무척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처신한다.
바쁘게 쫓아다니기 보다 조용히 독서하는 것을 더 좋아하며 유일한 취미가 있다면 휴일에 골프를 치는 것이다.

<민주적으로 일처리>
은발단구의 유기정 중소기협중앙회장도 대외적인 영향력에 있어서는 전임 김봉재회장에 다소 못미치지만 3선의원과 국회 상공위원장을 지내면서 매우 원만하고 폭 넓은 상공통이라는 평을 들었다.
유회장은 매우 민주적으로 기협중앙회 일을 처리해가는 스타일이다.
정주영전경련회장의 중앙집권적인 성격은 전경련의 운영에서도 잘 드러난다.
정수창 대한상의회장이 상의사무국조직의 활성화를 통해 살림을 꾸려나가려고 애쓴반면 정주영회장은 전경내의 사무국 조직·예산·인원을 축소시키고 1인 집권체제를 강화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전경련 초기에 거의 모든 일이 사무국중심으로 이루어 졌다면 지금은 거의 모든 일을 회장단회의가 주관하는 편이다.
따라서 현재 전경련의 힘은 거의가 회잠 개인의 힘에 의지하고 있고 앞으로 정회장이 전경련을 떠나면 전경련의 영향력도 많이 약해질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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