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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점 돌아온 미국의 정보감시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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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복
이상복 기자 중앙일보 워싱턴특파원
이상복
워싱턴 특파원

2013년 여름 전직 중앙정보국(CI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던진 충격은 컸다. 국가안보국(NSA) 등 미국의 정보기관이 전 세계 통신망을 이 잡듯 뒤져온 사실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 수집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무차별적이라는 게 논란의 핵심이었다. 미국이 부인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확인된 사실이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우방국 정상들의 휴대전화까지 엿듣고 있었다.

 문제가 커지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NSA 정보수집 범위를 축소하는 내용의 개혁안을 발표했다. 관련 법안도 의회에 제출됐다. 기업들도 서둘러 보안체계를 강화했다. 구글·애플 같은 기업은 휴대전화용 운영체계(OS)에 암호화 기능을 도입했다. 미 연방수사국(FBI) 제임스 코미 국장이 “암호 때문에 수사를 못 하겠다”고 공개 항의할 정도였다.

 특히 의미 있었던 건 국가의 권한과 한계, 개인 사생활 보호 등을 놓고 벌어졌던 토론들이다. 스노든의 폭로는 미국 정부 입장에선 곤혹스러운 일이었겠지만 논쟁을 불붙게 함으로써 어떤 면에선 사회가 더 건강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해 그간의 논의는 대부분 없었던 일이 돼가고 있다.

 우선 NSA의 무차별 정보수집을 제한하는 법안은 의회에서 발목이 잡혔다. 지난해 말 상원에서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폐기됐는데 부활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보수 성향의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상·하원을 모두 장악해서다. 오히려 파리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 정보감시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최근 의회 테러를 기도한 20대가 체포되자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정보기관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고 치켜세웠다.

 반면 시민단체들이 ‘빅 브러더법’이라고 불러온 사이버 정보 공유법안은 탄력을 받고 있다. 외국 해커의 사이버 공격이 의심될 경우 정부와 민간기업이 자유롭게 개인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한 내용이다. 이 법은 2013년 발의됐지만 스노든 후폭풍으로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소니 영화사 해킹 이후 분위기가 반전됐다. 2년 전에는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더라도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던 오바마 대통령이 지지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여기에 스노든 사태로 정부와 각을 세워왔던 인터넷 기업들도 소니 해킹 이후엔 정부와의 협조를 강화하고 있다.

 2년 가까이 미국에서 일었던 논란은 정보수집의 한계를 정하는 작업이었다. 테러 방지와 사생활 보호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지가 고민이었다. 두 가치 간에 절묘한 접점이 나온다면 세계 각국의 표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새로운 테러의 위협 속에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가는 현실은 안타깝기 짝이 없다. 정부가 빅 브러더가 될 수 있고 정보기관의 도덕성을 무작정 믿을 수 없다는 건 여전히 유효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상복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