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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곳 없는 비행학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미성년자란 문자 그대로 아직 완성되지 못한 미숙의 인격체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하면 잘못된 길에 빠져들기 쉽고, 그렇더라도 처벌보다는 선도를 위주로 제재를 하며 그 책임을 묻더라도 본인 보다는 그 주변 환경이나 기성사회 풍토를 탓하게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사직당국은 일단 비행을 저지른 학생 (18세미만의 소년범)일지라도 재범의 위험성이 없는 일시적인 과오라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해 선도위원의 선도책임을 조건으로 하여 불기소처분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대부분의 학교가 이들 학생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 이 제도가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중앙일보6월2일자)은 크게 당혹감을 느끼게 한다. 어딘가 본말이 전도됐다는 감마저 든다.
학교측의 얘기는 이들 학생믈 따뜻이 맞아 들여 다시 선량한 학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은 공감하지만 만약 재범이 발생했을 경우의 책임문제와 다른 학생에게 미칠 악영향등을 우려, 제적처분등으로 기피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학교측의 주장이 전혀 틀렸다고만 할 수는 없다. 현재 학교가 부담하고 있는 문제학생들에 대한 문제만해도 과중한 업무와 잡무에 쫓기는 교사들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임을 모르는바가 아니다. 더군다나 최근에 있었던 문제학생의 명단을 제출하라는 경찰측 요청을 받을만큼 현재 재학중인 학생들의 문제성만으로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여기에 범행이 뚜렷한 비행학생을 다시 받아들여 감시하고 선도하려면 적잖은 고충과 책임이 뒤따를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고해서「선도를 조건으로」기소유예처분을 내린 학생들을 학교에서 받아 들이지 않는다면 이들은 어디로 가란 말인가. 가뜩이나 좌절감과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이들 학생은 배신감과 자포자가에 빠진 나머지 다시 악과 비행의 구렁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미숙의 시기에 일시적인 과오를 저지른 한 인생을 평생동안 그늘지게 하고 더 큰 비행과 범죄의 길로 몰아 넣는 결과를 가져오기가 쉽다.
청소년의 문제는 우선 가정에서 1차적인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러나 그 다음으로는 학교가 맡아야할 부분이다. 진부한 얘기인 것 같지만 학교란 학문은 물론 인격의 도야까지를 책임맡고 있는 곳이다.
문제학생이 비행을 저질렀다고 하면 이에 대한 전적인 책임은 아니더라도 상당부분은 학교와 스승에게도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 문제학생의 명단을 제출하라는 경찰의 요청을 자체내에서 해결하도록 노력한다는 명분으로 거절한 학교측의 태도에 우리들은 공감하고 동조한 것이 아닌가. 「99마리의 양보다 1마리의 길잃은 양」을 구하는 자세로 학교가 이 문제에 임했으면 한다.
지난 81년에 「선도조건부 기소유예처분」제도가 생긴 후 거의 3년동안의 통계를 보면 1만2천명이 넘는 유예처분자 가운데 겨우 2%정도인 2백인명만이 재범을 한 것으로 나타나 좋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성년에 한한 것은 아니지만 인성이란 것이 미워하고 외면하면 할수록 비뚤어지고 잘못되기 십상이며 감싸고 다독거리면 좋아지는 것이 상례인 것이다.
비행학생을 학교에서 기피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다른 학부모들의 반발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내가 비행학생의 부모라면』하고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 볼 일이다. 내 아이가 비행학생에 물들까봐 두려워하는 자세보다는 남의 아이도 내자식 처럼 좋은 학생으로 만들어야 겠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가 아쉽다.
비행·문제학생 문제는 나와 남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학교·가정이 공동으로 생각하고 선도해야할 우리의 문제임을 다시 한번 강조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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