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 기사들은 토너먼트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 바둑판 위에서 산다. 그러나 바둑공부는 혼자보다는 더불어 하는 게 능률이 난다. 젊은 기사들의 연구모임인 소소회나 충암연구회는 그렇게 해서 많은 강자를 키워낸 산실이 되어왔다.
그러나 노장 중에서도 재기를 노리며 줄기차게 훈련하는 기사들이 있다. 서봉수 9단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서봉수 9단은 시합이 없는 날이면 권갑룡도장에서 연구생이나 어린 기사들과 '강 스파링'을 거듭한다. 초시계를 놓고 초속기의 실전을 거듭한다.
"젊어서는 실전 외에는 거의 공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공부를 하니까 새로운 자신감도 생긴다"고 서 9단은 말한다.
효과가 있으냐고 묻자 "연구생들과의 스파링은 특히 속기에 도움이 된다. 열심히 해서 꼭 타이틀을 한 번 더 따내는 게 마지막 목표"라고 말한다.
나이들수록 밀려날 수밖에 없는 승부세계에서 서봉수처럼 집념을 보이는 노장기사는 거의 없다. 사실 서 9단과 동갑내기인 조훈현 9단이 지금처럼 장수할 수 있는 것도 재능 때문만은 아니다. 어린 시절에 쌓아둔 폭넓은 밑천이 재능.체력과 결부되어 장수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서봉수 9단은 뒤늦게 '기경중묘(碁經衆妙)'나 '발양론(發陽論)' 같은 책을 보고는 "배울 게 많았다" 며 쑥스럽게 웃는다. 아마도 조훈현 9단은 이런 책들을 열살 때쯤 봤을 것이다.
한국랭킹 2위 최철한 9단과 김성룡 9단, 김주호 6단, 이영구 4단, 윤준상 4단 등 8명의 젊은 강자들이 연구실을 냈다는 소식이 들린다. 프로들의 연구실 하면 프로지망생들을 가르치며 공부도 하는 곳이다. 그러나 이들이 금호동에 낸 행현바둑연구실은 가르치지는 않고 공부만 하기로 정했다. 8명의 기사가 내년에 모조리 랭킹 10위 안에 드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프로기사도 운동선수와 마찬가지로 훈련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끼리끼리 뭉쳐 공동연구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노장들은 어디에 낄 것인가. 10대 들 속에서 홀로 끼어 스파링을 거듭하는 '잡초류의 대가'서봉수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이채롭기만 하다.
박치문 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