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결정의 민주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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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는 충격요법의 절묘한 비법을 이미 터득한 것 같다. 충격을 주어 깜짝 놀라게 해놓고 슬그머니 양보함으로써 보통대로 했으면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성과를 얻어내는 것이다. 이번 수입자유화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엄청나게 풀 것 같이 서둘렀기에 그정도나마 풀렸는지 모른다. 정책에 대한 신뢰나 충격의 확산등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당장의 목표를 달성하는덴 매우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자나 배상에 대한 차등과세도 실명제 파동이 있기 전에는 반대와 논란이 많았으나 워낙 고단위의 처방이 나오는 바람에 그 정도는 약과라는 생각이 들게끔 한 것과 비슷하다.
금년초 수입의 대폭 개방을 주장하던 사람들의 서슬이 어떻게나 등등하던지 무슨 획기적인 개방조처가 나오는 줄 알았다.
사실 그때만해도 수입자유화논이 기세를 부릴만한 여건이었다. 무엇보다 국제수지가 당초 예상보다 좋아졌고 국제금융시장도 한고비 넘긴 상황이었다.
그래도 많은 외채 때문에 대폭적 수입자유화가 이르다는 주장도 나왔으나 어느 선구적경제학학자가 『수입개방이 장기적으론 국제수지에 상관이 없다』고 첨단이론을 펴는 바람에 상식을 앞세우는 국산들이 입을 다물어야 하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이러한 첨단이론에 맞서 서둘러 수입을 트면 국제수지방어나 국내산업보호에 문제가 있으니 점차적으로 트는 것이 좋겠다는 전통적 주장이 나와 한동안 불꽃튀는 논쟁이 벌어지는 가 했더니 결국 3백5개품목의 개방으로 낙착되었다.
상식적인 선이다. 금년의 어려운 국제수지사정을 생각하면 다소 앞선감도 있으나 연초의 서슬에 비하면 많이 후퇴된 것이다.
결국 경제는 기발한 이론보다 많은 사람들이 납득하는 상식적인 선으로 낙착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다시한번 입증된 것이다.
이번 수입개방조처는 처음문제제기부터 공개토론·정책협의등에서 매우 모범적이고 민주적인 절차와 과정을 거쳤고 결과적으로 어떤 컨센서스 위에 결론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결정과정에선 다소 시끄러웠을지 모르나 서로 다른주장을 펼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뒷맛은 깨끗하다.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밀실에서 작성되어 일방적으로 내려오는 것과는다르다.
이번 수입자유화 작업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책이 민주적으로 제기·토의·합의될 바탕은 홑륭히 갖춰 졌다고 본다.
이런 훌륭한 바탕을 갖고도 금리문제 같은 것은 왜 한번 공개적으로 토론을 못해 보는지 불가사의다. 금리문제가 악역이 돼야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최우석부국장겸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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