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학 칼럼

의료 경쟁력, 제도에서 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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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기왕 우수한 인력이 의료계로 진출하였다면 이들이 우리의 국가경쟁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중 우수한 사람들은 건강보험 비적용 항목이 많아 수익이 많고 업무가 쉬우며 위험성이 적어 편한 분야로 진출한다. 상대적으로 훨씬 더 중요한 기초의학, 중요 외과 분야 등은 외면당하고 있다. 의과대학 졸업생이 기초의학을 외면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기초의학은 성격상 이공계에 속하고 대학원생들도 대개 이공계 학부 졸업생들이다. 그러나 의과대학의 일부라는 이유로 장학사업 등 각종 이공계 육성사업에서 제외된다. 더욱이 대형 과제, 제품화 과제를 중심으로 국가 연구정책이 변화하면서 의학 발전의 원동력인 기초의학은 그 저변이 더욱 약해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건설.반도체.자동차.조선.화학 등의 발전을 이룬 원동력은 과거 경쟁을 통해 정제된 우수 인력이 그쪽 분야에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간은 최우수 인력이 의과대학으로 진학하였으므로 십 년 뒤에는 의사들이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것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우수 인력 흐름이 왜곡되는 한 그러한 기대는 난망이다. 혹자는 의사들이 이기적이라서 그러한 왜곡이 생겼다고 한다. 일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의료제도는 의학도에 대한 사명감 교육만으로는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물줄기이다.

의료 서비스의 경쟁력이 인적 자원만으로는 제고되지 않는다. 그것에 걸맞은 제도가 필요하다. 우수 인력이 전략적 중요 분야에 유입되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의학 교육을 4년제 대학 졸업생에게만 허용하여 의료 인력의 질을 높이겠다는 노력은 낭비적 요소가 많을뿐더러 군복무 의무자와 경제적 약자에 대한 강한 차별적 요소도 있다.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효율이 낮은 정책에 집착하지 말고 능력과 동기를 갖춘 소수의 우수 인력을 대상으로, 의학 교육 도중 기초학문을 접목하는 MD-Ph.D제도, 우수 전공의에 대한 학술 활동 지원, 공중보건의의 연구기관 근무, 임상 전공자에 대한 병역특례 인정 등 전략적으로 교육의 기회와 비용을 지원하고 이들에게 밝은 앞날을 제시하여 기초의학, 필수의료, 첨단의학을 이끌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지나친 특혜라면 제도의 매력을 잃지 않는 범위 안에서 그들에게 국가를 위한 의무를 지우면 된다. 그 외의 사람들은 지금과 같은 제도로 훌륭한 의사가 되면 충분하다. 지금도 의사들은 활동 내용에 비해 너무 많은 교육을 받고 있다.

아울러 의료에 있어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면서도 지금보다 시장 논리를 확대해야 한다. 통제가 많고 재투자가 어려운 우리의 의료체제로 국내 의료 수요를 해결할지 몰라도 세계와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명에 직결되는 부문의 수가는 싸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힘들고 어려운, 생명에 직결된 부문에는 자원이 투자되지 않는다. 신생아 중환자 관리 수가가 싸기 때문에 관련 분야 투자를 기피한다. 그래서 신생아 중환자는 치료를 받으려 해도 갈 곳이 없다.

의료계를 이공계 침체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것보다는 기왕 모인 인적 자원을 이용해 튼튼한 의료를 구축하고 국부를 창출하는 것이 더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왕규창 서울대 의대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