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미국식 '근로소득 세액 공제' 2004년 도입 채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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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유럽에서는 저소득층 지원 제도가 결과적으로 근로의욕을 떨어뜨려 경제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

'복지의 천국'으로 불리며 한때 사회보장 제도의 모델로 부러움을 샀던 유럽 선진국의 저소득층 지원 제도의 한계는 이렇게 요약된다. 이와는 달리 미국은 근로소득세액공제(EITC)제도를 통해 저소득층을 지원하되 일을 하려는 개인의 의욕과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막는 등 성과를 거두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참여정부는 오는 9월까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내년부터 제도화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개념부터 생소한 제도라서 숙제가 많다. 큰 돈이 들어가고 사회보장과 조세 제도를 함께 손질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 지금 EITC인가=외환위기 이후 벌어진 빈부격차를 좁히기 위해서다. 특히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국민의 정부에서도 저소득층 지원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단순히 소득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지원하는 유럽식 모델에 가까워 비용은 많이 들어가는데 효과는 적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돈은 돈대로 쓰면서 효과가 적다. 무조건 최저 생계비를 대주니까 지원금만 받고 일을 하지 않는 유럽식 병폐가 나타났다. 저소득층 스스로 일하려는 마음으로 빈곤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노력하도록 이끄는 쪽으로 보완해야 한다. "(대통령 정책실 김재진 소득파악팀장)

기초생활보장 제도의 한계=국민의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늘어난 저소득층을 보호하기 위해 2000년 10월부터 기초생활보장 제도를 도입했다. 정부가 매해 물가 등을 감안해 정하는 최저 생계비보다 적을 경우 그 차이만큼을 의료.교육.생계 등 7가지 급여를 통해 지원한다. 올해 최저 생계비는 4인 가족 기준 1백1만9천원이다.

이 제도의 함정은 최저 생계비보다 소득이 적으면 그 차액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지원한다는 점이다. 대상자로 선정되면 어차피 최저 생계비가 보장되므로 굳이 일을 하려 들지 않는다. 더구나 최저 생계비보다 약간 더 버는 사람들이 일할 능력이 있는데도 최저 생계비를 적용받기 위해 소득을 축소 신고하는 경우마저 생겼다.

EITC를 도입하면=땀 흘려 일하는 사람과 일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지원 금액이 세금 공제를 통해 달라진다. 기존 세금공제 제도는 낼 세금을 모두 공제하면 끝나는데 EITC는 소득이 많을수록 세금환급을 통해 정부에서 지원받는 금액이 커진다. 공제받을 수 있는 환급 세액이 일정 기준보다 적으면 개인이 내야 할 세금과 정부가 정한 세금환급 금액의 차이만큼 현금으로 받는다.

대상은 철저하게 땀을 흘려 일해 번 근로소득, 즉 임금과 팁.수수료 등에 한정한다. 이자와 배당소득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예를 들어 현행 제도로는 납부세액이 10만원이면 빈곤층은 이 세금의 납부를 면제받는다. EITC가 도입되면 해당 근로자는 정부가 책정한 공제한도까지 세액을 돌려받는다. 공제 한도가 1백만원이라면 90만원을 현금으로 받을 수 있다.

자영업자 소득파악이 관건="근로능력이 있는 경우만 대상자로 선정할 것이므로 기초생활보장 제도 혜택을 받는 사람들도 일부만 EITC를 신청할 수 있다. 신고 소득금액이 많을수록 혜택이 커지므로 소득 파악에도 도움이 된다. "( 김재진 팀장)

미국에서 EITC가 가능한 것은 자영업자 소득파악률이 72~73%로 돈 벌이가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자영업자 소득파악률이 30%선인 우리 형편에선 자영업자는 물론 저소득층의 소득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EITC 대상을 잡기가 어렵다.

정확한 소득 파악 없이는 현행 기초생활보장 제도에 따른 지원 기준이 그대로 적용돼 많게는 연간 소득 1천2백23만3천원(1,019,411원×12)수준에서 기준금액이 결정될 수도 있다.

그러나 최저생계비는 어디까지나 지원 한도이며 전부를 현금으로 주는 게 아니다. 따라서 근로소득에 대해서만 지원하는 EITC 대상 금액은 더 적다. 이 기준이 지나치게 낮으면 빈곤 가구의 근로의욕을 북돋기 어렵고 너무 높으면 재정 부담이 커진다.

현진권 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EITC에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가므로 예산 낭비를 줄이려면 저소득층 가구의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필수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김동호 경제연구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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