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투성이 학용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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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다닥 다닥 붙어있는 간판에도, 내나라말도 아직 제대로 못하는 걸음마 아가들의 옷에서부터 청소년들 옷까지 여기가 과연 대한민국인지 외국인지 분간조차 할수 없게 영어로 쓰여져있다. 며칠전 텔리비전화면에 청소년들이 영어로 쓰여진 옷을 즐겨입고 있다는 문제점을 잠깐 보았다.
입는 사람들을 나무라기전에 만들어내는 업자들이 우리말 애용에 앞장서야 될것 같다. 제품회사들이 모든 제품에 우리나라 글로만 써놓는다면 소비자들은 아무런 신경쓰지 않고도 우리말과 우리글을 사랑할 것이다. 한글도 잘모르는 어린아이들의 장난감·전자제품·가방·학용품등 그 어느것드 영어로 안 쓰여진것이 없다. 한글은 잘 보이지도 않는 구석에 누가 볼세라 조그마하게 써놓고 앞부분은 으례 영어로 크게 써 놓는다.
올해 국민학교에 입학한 아들녀석이 고사리같은 손으로 글씨를 쓰는데 너무 힘들어 보여 소위 유명상품의 연필을 사주었더니 우리 어릴적에 쓰던 연필 보다 아주 진하게 잘나오고 잘 부러지지도 않아 우리나라의 좋은 기술에 찬사를 보내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엔 녀석이 그 연필을 학교에 안가지고 간다고 떼를 쓴다. 이유률 물었더니 자기네반 애가 일본연필을 가지고 왔다가 선생님한테 혼났다며 미국연필을 학교에 가지고 가면 선생님한테 야단맞을까봐 그런단다. 그리고 선생님이 한국연필이 제일좋다고 하셨단다.
『너의 선생님은 참 홀륭하신 선생님이시구나』하면서, 이건 한국연필이니까 괜찮다고 가지고 가라해도 막무가내다. 녀석은 연필자루에 영어로 쓰여진 것을 손가락질하며 기어이 미국연필이라고 한다. 정말이지 연필자루 사방엔 영어로 쓰여있고 끝부분에 아주 작게 한글이 두어자 적혀 있었다. 우리것을 사랑하려하는 이 어린것들의 학용품에 까지 영어로 크게 적어놓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 <서울동작구대방동375의1 성남고 사택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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