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날씨 「이상」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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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잘해야 본전」 「죄 없는 죄인」-.
기상 근무자들이 자조적인 말투로 흔히 내뱉는 소리다. 일기예보가 컴퓨터처럼 딱 들 어 맞을 때는 아무소리가 없다가도 맑을 것이라는 휴일 날씨예보가 갑작스럽게 퍼붓는 소나기 때문에 틀어지기라도 하는 날엔 기상대 전화는 불이 난다. 대뜸 육두문자로 시작되는 호통과 불평에 밤잠을 설친 근무자들은 죄인 아닌 죄인이 돼 『죄송합니다』를 연발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구닥다리 장비의 교체와 인력증원은 요원한 얘기로 남아있다. 이러한 음지에서 40년 가까이 일해 왔고 그 중에서 6년이 넘는 기간을 기상예보의 총책임자인 예보국장 자리를 맡고 있는 김광식 국장.
-오늘 강릉의 최고기온이 34도였다는데.
『올 여름 더위가 어떻게 될거냐는 말씀이군요.』
기상장이(?)경력 40년의 관록이 말해주는 예리한 넘겨짚음이랄까.
사채임을 전제로 서두를 꺼내는 그의 금년 여름 기상 예측은 한마디로 「예년 과거의 같은 패턴」을 보이리라는 것
-예년과 같은 패턴이라면. 『그건 대체로 7월말께 장마가 지고 8월 안에 한차례 큰 더위 가 오는 전형적인 한국형 여름날씨를 말하는 거죠.』
-그 이외의 별다른 특징은 예상되지 않는지.
『현재로선 80년도와 같은 냉해나 작년 같은 혹심한 가뭄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아요』
다만 특징적인 여름날씨라고 할 수 있는 후덥지근한 현상이 좀 빨리 오는 대신 가을도 그만큼 빨라지지 않을까 하는 「감」이 든다는 부연설명이다.
그러나 이 「감」은 이미 농수산부 측에 받아들여져 금년도 농사일정을 조금씩 앞당기도록 돼있다는 얘기이고 보면 육감에 의한 감만은 아닌 성싶다.
장기적인 기상전망은 농 어업 뿐 아니라 냉장고 에어컨 또는 콜라 사이다 등에서 패션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생활용품의 판매패턴을 바꿔 놓기도 하는데. 『그 때문에 최근에는 기업들로부터 장기기상 전망에 대한 자문을 많이 의뢰 받고 있지요. 금년의 경우 예상대로 더위가 약간 빨리 오는게 현실로 나타난다면 냉장고 선풍기 에어컨 등은 불티나게 팔릴게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결국 가전제품회사는 미리 생산을 늘려놓아야 한다는 얘긴데, 이것도 맞을 경우는 별탈이 없지만 안 맞을 때 돌아오는 여파를 생각하면 할 수도 안 해줄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질 때가 많다는 것.
-장기예보의 필요성에 비추어 공식적인 장기예보를 갖출 만도 한데 .
『우선 기상학적인 측면에서 72시간이상의 예보는 별 의미가 없어요. 그만큼 기상을 구성하는 팩터가 다양한 때문이죠.』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대강의 장기예보라도 전담할 인원과 장비의 여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
현재 기상대 예보국 직원은 57명으로 이 인원이 3교대로 근무하며 일간 주간예보를 내 고 있는데 그것도 손이 모자라 쩔쩔매는 실정이란다.
장비면에서도 옛날보다 나아졌다고는 하나 62년에 도입한 M-28텔렉스를 아직까지 기 상 송수신용으로 쓰고 있는 단적인 예를 봐도 장비의 현대화가 시급하다는 것.
-그래서 기상 예보적중률이 떨어지고 있는지.
『결코 그렇지 않아요. 현재 기상예보적중률이 80%이상을 항상 유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선진국과 차이가 없는 수준이예요.』
가끔 일본이나 주한미군의 기상예보에 우위성을 두려는 사람들도 많은데 한국의 기상은 역시 한국기상인력이 가장 잘 알 수밖에 없으니 믿어 달란다.
왜냐하면 한국은 지역적 특성 때문에 대륙기단과 해양기단 한대기단과 적도기단의 영향을 함께 받고있고 산악이 많아 국지기상의 변화도 극심한데, 경험의 뒷받침이 없이는 근사한 예보를 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일본도 금년여름 장기예보를 두번이나 수정했어요. 4월초엔 냉하가 온다고 예보했다가 다음엔 좀 더 올 거라고 고치고 나서 최근에는 제가 예상한 대로 예년과 비슷한 패턴이 될 거라고 고쳤지요』
일본의 장기예보가 결국 자신의 예측을 뒤따른 결과에 흡족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것 역시 「예보」에 지나지 않는다는 단서를 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윤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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