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디자인의 마술기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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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산업용 컴퓨터 제조업체인 효진콘텍은 지난해 초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PC본체와 모니터를 하나로 결합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는데 산뜻한 제품 디자인이 떠오르지 않은 것이다.

조기범 사장은 고민 끝에 ㈜코랄디자인을 찾아 사용이 간편하면서도 날렵한 디자인의 개발을 의뢰했다. 비용은 3천4백만원. 동시에 사내 기술진들로 팀을 구성, 디자인을 기술적으로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검토케 했다.

디자인 작업엔 40여명 전 직원이 참여했다. 모니터 뒤쪽의 받침대 각도와 색깔, 제품 이름을 놓고 전 직원의 의견을 묻고 투표까지 했다. 당초 회색이었던 제품 색깔도 투표를 거쳐 밝은 실버색으로 바뀌었다.

작업 시작 6개월 만에 지난해 10월 큐렉손(Qrexone)이란 제품이 탄생했다. 마치 컴퓨터 모니터만 있는 듯한 모습이지만 본체와 LCD모니터를 합한 PC였다.

회사는 곧바로 로스앤젤레스.하노버 등에서 바이어들과 제품상담을 벌여 10억원어치를 계약했다. 올초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37만달러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조달청이 우수디자인 제품으로 인정해, 정부 부처에 10억원어치를 납품할 예정이다. 이탈리아.벨기에.호주에서도 주문이 들어와 연말까지 2백억원 매출은 문제없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고유열 경영관리이사는 "디자인 투자의 효과를 절감했다"고 말했다.

원적외선 실리카 히터를 제조하는 대명기계공업은 고객들이 사무실 책상에 앉아 제품을 조작할 때 의자 아래로 몸을 숙여야 하는 불편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고민이었다. 선풍기든 히터든 조작버튼이 제품 맨 아래에 있어서다.

2001년 8월 회사는 ㈜가람디자인을 찾아 조작버튼을 제품 위에 두면서도 거부감을 주지 않는 제품 디자인을 의뢰했다. 4천6백만원을 들여 10개월여만인 지난해 6월 버튼이 위에 있는 히터를 완성했다. 제품을 본 일본 바이어는 곧바로 40억원 수입계약을 체결했고 올해는 90억원 정도를 추가로 주문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강병순 관리부장은 "조작버튼 위치 하나를 바꿔 이렇게 매출이 크게 늘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요즘 경기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지만 제품 디자인이 우수한 기업들은 불황을 모른다.

한국디자인진흥원 정경원 원장은 "국제시장에서 중.후진국의 업체들이 선진국 업체에 밀리는 것은 이제 기술력과 마케팅보다는 제품디자인의 차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디자인진흥원(disignDB.com)이 2000~2002년 디자인혁신상품개발사업에 참여한 90개 회사 상품 중 디자인이 우수한 43개사 제품을 조사한 결과 제품 디자인에 2천6백만원을 투자할 경우 그로 인한 매출증가는 15억7천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주요 제조업체를 상대로 실시한 '디자인혁신 상품개발 사업의 성과분석' 결과를 봐도 디자인이 우수한 업체의 평균매출 증가율은 그렇지 않은 업체의 세 배가 넘었다. 우수디자인 상품 업체의 경우 수출도 디자인 상품 개발이전보다 평균 21%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지적재산권과 의장등록 등 산업재산권 등록 및 출원건수도 비교가 안될 만큼 차이가 나 업체 평균 4.6개로 일반기업(0.08개)의 57배나 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능에 주력하던 주차티켓 발매기나 실내 골프연습기기 업체들도 디자인에 힘을 쏟고 있다. 노상 주차관리기 제조업체인 큐비에스는 지난해 2월 자연스런 조각품 같은 제품(anguard-OS)을 개발했다.

철골 구조물처럼 흉스러운 외형을 환경친화적 예술품처럼 디자인한 것이다. 2천만원을 들여 개발했는데 지난 한해 7억원어치를 국내에서 팔았고, 수출계약도 13억원어치를 했다.

송동호 개발과장은 "13개월 동안 디자인 회사와 공동으로 환경친화적 디자인 개발에 몰두한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실내 골프퍼팅 연습기를 만드는 ㈜올투웰도 디자인 개발의 효과를 봤다.

서종훈 총무이사는 "기존 제품은 실내에 설치하면 모양이 흉하고 옮기기가 불편했는데 8개월 동안 디자인 작업을 해 만든 제품(버디웨이 수퍼와이드)은 휴대가 간편하고 외양이 세련됐다"고 말했다. 2천만원의 디자인 개발비를 들인 이 제품은 지난해 19억원어치가 팔렸다.

이밖에 가온미디어는 위성 및 지상파 디지털방송 복합수신기인 멀티미디어 셋톱박스를 실내장식형으로 디자인해 지난해 매출 42억원을 올렸고, 전기압력 보온밥솥 제조업체인 ㈜부방테크론은 상하 일체형 제품 디자인을 개발해 개발비용의 1백배가 넘는 2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최형규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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