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EU 가입' 46년 꿈 이룰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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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EU 정식회원 가입 협상을 시작하기로 결정한 3일 룩셈부르크 외무장관 회담장 앞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이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아르메니아인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터키에 의해 대량 학살됐다. 아르메니아가 독립한 현재도 아르메니아인 상당수가 터키에서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다. 아르메니아 문제는 터키가 EU 가입을 위해 풀어야 할 부끄러운 과거사로 꼽힌다. [룩셈부르크 로이터=뉴시스]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 협상이 3일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터키가 가입을 희망한 지 46년 만이다.

EU 회원국 25개 외무장관과 터키 외무장관은 3일 밤 룩셈부르크에서 공식 협상 개회식을 했다. EU 외무장관들은 이날 밤 '터키의 정식 회원 가입'을 전제로 한 협상에 반대하는 오스트리아를 설득해 예정된 개회식을 열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는 지난달 30일 "터키에 정식 회원 자격 대신 한 단계 낮은 '특별 파트너십'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U 외무장관들은 2일부터 30시간에 걸쳐 오스트리아를 설득했다. 외무장관들은 이와 함께 크로아티아의 EU 가입 협상도 11월부터 하기로 했다.

터키와의 협상은 최소한 9년, 길게는 1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EU가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개혁에 필요한 시간이다. 터키가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협상은 연기.중단될 수 있다. 이슬람 국가에 대한 유럽인들의 거부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 협상 개시까지의 우여곡절=터키 압둘라 굴 외무장관은 3일 밤 늦게 룩셈부르크에 나타났다. 그는 이날 낮까지 "정식 회원으로 가입하기 위한 협상이 아닐 경우 모든 제안을 거부한다"며 터키에 머물렀다. 그는 "터키에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했다. EU 임시 의장국인 영국 잭 스트로 외무장관은 "오늘은 유럽만 아니라 전 세계적 차원에서도 역사적인 날이다. 터키가 EU에 가입하면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 간, 유럽과 아시아 대륙 간 가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막 협상 개시 자체가 중시되는 것은 오랜 우여곡절 때문이다. 터키는 1959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 시절부터 유럽에 포함되길 희망했다. 63년 준회원이 되었지만 정회원은 될 수 없었다. 이유는 '자격 미달'. 이슬람이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신정(神政) 국가로서의 성격을 모두 벗어나야 했다. 시장개방과 투명성 강화 등 경제 개혁도 필요했다. 사법 개혁과 여성의 지위 향상 등 사회제도 차원의 유럽화도 요구됐다.

터키의 가입 협상 개시일이 10월 3일로 확정된 것은 터키 정부의 개혁 노력이 일단 합격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 산적한 과제=터키의 그동안 개혁은 협상자격을 얻기 위한 통과 절차였다. 앞으로의 본격 협상용 과제는 더 험난하다. 터키가 충족시켜야 할 EU 자격 조건 문건은 8만여 쪽에 이른다. 35개 항목에 걸쳐 평가를 받아야 한다. 심사를 다 거치려면 2020년 정도 가입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외교적 최대 현안은 키프로스와의 관계 정상화다. 터키는 분쟁을 겪어온 그리스계 키프로스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회원국 간 국교가 정상화돼야 EU 가입이 가능하다. 키프로스 대통령 타소스 파파도풀로스는 "터키의 EU 가입을 비토할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 60번이나 있다"고 말했다고 BBC는 전했다. EU는 만장일치제이기에 키프로스가 반대하면 가입이 불가능하다. 소수민족인 아르메니아인 학살과 투르크족에 대한 차별 행위 등 과거의 반인류 범죄 행위도 적절한 진상 규명.보상 등 절차를 거쳐야 하는 난제다.

◆ 유럽인들의 터키포비아="유럽인들은 터키라는 말에서 '테러'와 '실업'을 연상한다"고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전했다. 테러란 이슬람에 대한 거부감이다. 기존의 EU 회원국은 모두 기독교 국가다. 특히 9.11 이후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을 테러와 동일시해왔다. 실업은 값싼 터키 노동력이 대거 몰려올 것이란 두려움이다. 터키가 정식 회원이 될 경우 터키인들은 모든 EU 국가에서 자유롭게 취업할 수 있게 된다. 터키 인구 7200만 명은 유럽 최대. 1인당 GDP(4050달러)는 유럽 최저 수준. 터키는 EU 내에서 인구 수만큼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회원국 가운데 가장 많은 보조금을 받아갈 것이다.

최종 걸림돌은 EU 회원국의 국민투표다. 프랑스.오스트리아 등은 협상이 끝나면 국민투표에 부쳐 최종 승인할 예정이다. 협상 과정에서 터키에 대한 유럽인들의 거부감이 희석되지 않을 경우 국민투표는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 바로잡습니다

10월 5일자 10면 '터키 EU 가입 46년 꿈 이룰까'의 그래픽 자료에서 터키의 면적은 780만㎢가 아니라 78만㎢이기에 바로잡습니다. 기사 중 '…터키 인구 7100만 명은 유럽 최대'라는 부분에서 인구는 7200만 명이 맞습니다. 또 유럽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는 터키가 아니라 독일(8300만 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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