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에 빠진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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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일본이 한국.중국 등 아시아 이웃 국가들과 사이가 나빠지는 데 대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책임을 묻는 비판의 목소리가 일본 내부에서 잇따라 나왔다.

아사히(朝日)신문은 12일 사설에서 "일본 외교가 사면초가의 상태에 빠져 있다"며 "고이즈미 총리의 책임이 무겁다"고 정면 비판했다. 사면초가의 상황이란 ▶역사 문제로 인한 한.일 및 중.일 관계 악화▶쿠릴 열도 문제 등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일 전망이 불투명해진 러.일 관계▶핵.납치 문제에서 조금의 진전도 없는 북.일 관계 등을 뜻하는 것이다.

아사히는 최근 주변국의 반일 무드 확산에 대해 "밑바탕에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을 합사(合祀)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함으로써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이라는 인식을 확대시켰다"는 것이다.

아사히는 고이즈미 총리의 미국 편향 외교에 대해서도 비판하면서 "좀 더 큰 국익을 생각하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자민당 내부에서도 고이즈미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호리우치 미쓰오(堀內光雄)와 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 등 비주류파 중진들은 "가장 중요한 과제는 외교 문제"라며 "총리가 한.일, 일.중 관계에 더 진지하게 매달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대 야당인 민주당의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대표는 11일 "중국 반일시위의 최대 원인은 양국 정상 간 신뢰 관계가 없어 진짜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민당의 마다이치 세이지(又市征治) 간사장도 "미국을 추종하느라 아시아 국가와의 신뢰 구축에 소홀히 한 고이즈미 총리의 외교정책이 반일시위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재계를 대표하는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게이단렌(經團連) 회장도 중국 내의 일본제품 불매 운동 등을 우려, "일.중 정부가 회담 등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고이즈미 총리가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11일 "그것(야스쿠니 참배)과 이것(반일시위)은 별개"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중국에서 확산하고 있는 반일시위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17일의 중.일 외무장관회담을 예정대로 추진키로 했다.

또 22일부터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선 고이즈미 총리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정상회담하는 방안을 중국과 조율키로 했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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