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북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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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통일의 전망이 요원한 이상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차선책이·주변 큰 나라들에 의한 남북한의 교차승인이라는데 반론을 내세우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중공. 소련의 미묘한 3각 관계 때문에 70년대 중반부터 논의되기 시작한 교차승인도 아직은 실현을 낙관할만한 자료가 보이질 않는다. 최근 워싱턴서 열린 한미외상회담에서 교차승인이 시기상조라는 결론을 내린 것도 한반도 정세에 대한 솔직하고도 현실적인 평가라고 하겠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 특히 동경의 외교가 일각에서는 일본이 북한을, 그리고 중공이 한국을 승인하는 반쪽 짜리 교차승인이 어떻겠느냐고 말을 내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것도 현실성이 없는 방식이어서 진지한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그런데 일이 묘하게 되는 징조인지 중공 민항기 납치사건으로 한국과 중공간에 생각지도 않던 직접회담이, 그것도 재3국이 아닌 서울에서 턱 열리고, 곧이어 일본정부는 북한의 공식대표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일본입국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이 두 가지 사태를 한 줄에 묶어서 생각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부분적인 교차승인에 앞서서 일어나는 교우접촉같이 보이기도 한다.
중공여객기가 한국으로 날아든 것은 우연이오 돌발사건이지만 승객·승무원·기체반환을 위한 교섭은 한국과 중공간의 첫번째 공식회담이었다.
일본이 그 점에 착안했는지 어떤지 그들이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으니까 알 수는 없으나 아시아·아프리카 법률 자문회의에 참석할 북한대표들을 입국시키려고 결정을 내리기까지에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한국·중공회담, 중공승객들에게 퍼부어진 한국사람들의 소나기호의, 그리고 종전과는 달리 일본의 거간노릇 없이 서울과 북경이 직접 교섭을 했다는 사실의 의미를 이모저모로 치밀하게 저울질했으리라는 짐작은 정확할 것 같다.
이런 짐작이 제법 옳은 것이라면 일본정부가 취한 조치는 우리가 보기에 좀 성급한 것 같다.
우리가 중공 민항기에 관한 한국·중공회담이 두 나라 사이에 민간차원이나마 어떤 접촉의 길을 트고, 결국에 가서는 본격적인 관계개선의 바탕이 되기를 바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쪽의 희망이다. 지금 북한은 북경을 상태로 흡사 악처가 부군을 대하듯이 투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승객들이 돌아가고 또 기체까지 반환 받은 후의 중공의 태도는 완전한 미지수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걸 일본도 알아야 한다. 북한 사람들에게 입국을 허용하는 것이 한 중공접촉과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희망적인 관측일 뿐인 것을 전제로 하는 발상이다.
일본정부는 적절한 구실만 있으면 북한과의 교류를 늘리고, 북한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일본사람들의 북한 방문을 묵인 아니면 장려하고 있다.
나라마다 스스로의 국가이익을 추구할 자유와 권리는 있다. 그러나 한 나라의 작은 이익이 다른 나라에 엄청난 피해를 줄 경우라면 작은 이익을 우선 포기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일반론으로도 그러한데 하물며 안보상의 공동의 이해를 갖고있고, 한반도의 평화정착이 일본의 안전보장에 필수적인 현실에서는 일본의 북한접촉은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다.
북한 사람들이 바깥바람을 많이 씌면서 그들의 사회가 국제적으로 얼마나 낙후되어 있고 김일성 부자의 세습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독재가 공산세계의 기준으로도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에 눈뜨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한반도에서의 힘의 균형이라는 특수한 형편을 놓고 보면 일본이 북한에 보내는 웃음은 한·소, 한·중공관계의 진전을 너무 앞서가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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