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 "회사는 고용 불안" 6만여 명 주경야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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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공무원·군인 꿈꾸는 직장인

30일 서울 노량진의 한 행정고시 학원에서 9급 공무원시험 준비생 500여 명이 강의를 듣고 있다. 김상선 기자

30일 오전 서울 노량진의 한 고시학원. 법원직 9급 공무원반 대형 강의실에는 500여 명의 수강생이 들어차 있었다. 언뜻 보아도 30~40대 수강생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학원 측은 직장인이거나 퇴직자가 전체 수강생의 15% 정도 된다고 밝혔다. 이 교실에서 만난 수강생 김모(28.여)씨는 올 초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그는 "오전 7시 집을 나와 자정 무렵 귀가하는 생활 때문에 두통과 소화불량이 생겨 한의원에 갔더니 고3병이라 하더라"며 "그래도 합격만 하면 평생이 보장된다는 생각에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무원시험이나 교육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인터넷 유행어로 '공시족'이라고 한다. 공시족을 위한 인터넷 커뮤니티도 문전성시다.

'9급 공무원을 꿈꾸는 사람들(cafe.daum.net/studyTV)' '공무원시험 합격 따라잡기(cafe. daum.net/9Official) 등은 회원 수가 4만~7만 명에 달한다. 취업 전문가들은 공무원시험 응시자 수 등으로 추정해볼 때 40여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말한다. 이 중 대략 6만여 명의 직장인이 공무원이나 교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주경야독 중이라고 한다.

벤처기업에 다니는 고모(27.여)씨는 최근 대학동기 3명과 교육대학 편입준비를 하고 있다. 고씨는 "일하면서 공부하기 힘들어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미디어마케팅 업체에 다녔던 이모(29.여)씨도 지난해 말부터 교육대학원 입학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교사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다. 이씨는 "학과 동기들이 최근 잇따라 직장을 그만두고 교육대학원에 입학하는 것을 보고 따라 나섰다"고 말했다. 공시족들은 "일반 기업체는 고용이 불안정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기업에 다니면서 1년 동안 몰래 주경야독한 뒤 최근 금감원 공채에 원서를 낸 김모(34)씨는 "당장 연봉도 중요하지만 툭하면 구조조정의 칼날을 세우는 직장에서는 일하기 싫다"며 "지난 4년의 경력은 인정받지 못해도 좋다"고 말했다.

대기업 증권사를 그만둔 뒤 올해 9급 법원등기직에 합격한 이기연(29.서울중부등기소) 주임은 "수입은 증권사의 딱 절반이지만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스트레스가 없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말했다.

홍주연.김필규 기자<jdream@joongang.co.kr>

'공무원 = 철밥통' 예전같진 않아
능력 낮을 땐 퇴출 추진 퇴직 후 '낙하산'도 옛말

공무원의 인기가 상한가를 치는 것은 노후가 보장되고 일반 기업처럼 구조조정이 없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우선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보다 많다. 올해 33년간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퇴직한 지방공무원 정모(59) 서기관은 퇴직수당으로 6700만원, 매달 244만원을 받는다. 정씨 경력으로 국민연금을 받는다면 월 110만원 정도가 된다. 공무원은 월보수의 17%를 연금보험료로 내고, 국민연금 대상자는 9%만 내기 때문에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노후에 쓸 자금은 현격히 차이가 난다.

공무원의 또 다른 장점으로 꼽히는 것은 신분 보장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공무원은 형의 선고, 징계처분 또는 법에 정하는 사유가 아니면 면직당하지 않는다'고 명시됐다. 정년(5급 이상이 60세, 6급 이하는 57세) 전에는 본인이 스스로 그만두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강제로 내칠 수 없다. 퇴직 후 산하 기관이나 관련 단체에 취업하는 길도 열려 있다.

그러나 최근 공무원의 '철밥통 신화'도 흔들릴 조짐이다. 정부는 능력.성과가 낮은 공무원을 퇴출하는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산하 기관이나 단체에서 낙하산 인사라고 반발하기 때문에 정년퇴직 후 재취업길도 좁아졌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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