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감지 못하는 경보기 … 일반 아파트도 불안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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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백동현(左), 이용재(右)
12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시 A아파트 8층의 한 집안 거실. 소방안전설비를 점검하던 백동현 한국화재소방학회장(가천대 설비소방공학과 교수)이 말했다. “예민한 연기 감지기가 아니라 열 감지기다. 불꽃보다 빨리 번지는 유독가스에는 속수무책이다.” 거실뿐 아니라 방 3개 천장에 있는 것도 모두 열 감지식이었다. 연기 감지기는 계단에만 설치됐다. 백 회장은 “아파트 불은 계단이 아니라 집 안에서 일어난다”며 “이런 식이라면 화재 때 번지는 연기 때문에 인명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오후 서울 노원구의 B아파트. 피난계단 곳곳에 자전거와 버려진 가구, 쓰레기더미가 쌓여 있다. 불이 났을 때 도저히 주민들이 신속하게 대피할 수 없는 상태였다. 전체 21개 층 중 7개 층은 계단과 집 사이 방화문이 활짝 열린 상태였다. 계단에 자전거 등을 넣어 놓고 문을 열어둔 것이었다. 함께 현장을 돌아본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겨울엔 언제 불이 날지 모르므로 반드시 방화문을 닫아둬야 한다”고 말했다.

 도시형 생활주택만이 아니었다. 아파트 역시 곳곳이 소방안전 사각지대였다. 비용을 아끼려고 성능이 떨어지는 장비를 사용하거나, 입주민들이 잘 모르고 비상 대피로를 막아놓은 것 등이 원인이었다.

아파트 천장에 달린 화재감지기(왼쪽)는 대부분 온도가 섭씨 70도 이상일 때 작동하는 열 감지 방식이다. 유독성 연기가 퍼져도 경보가 울리지 않는다. 오른쪽은 옆 집 베란다로 통하는 비상통로를 짐으로 막아 놓은 모습. 판자로 된 뒷벽을 발로 차면 부서져 통로가 열리지만 이런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전익진·조혜경 기자]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화재경보기다. 본지가 전문가들과 서울·의정부의 아파트를 돌아본 결과 대부분 열 감지식 경보기를 달아 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온도가 70도 이상 되면 경보가 울리는 장치다. 백 회장은 “부근에서 불이 났다면 온도가 70도에 이르기 전에 유독가스가 도달한다”며 “불이 났을 때 사망 원인의 70~80%가 질식인데, 열 감지기로는 이런 피해를 막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아파트들이 열 감지식 경보기를 장착하는 이유는 가격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아파트를 지을 때 열 감지기는 개당 약 1000원, 연기 감지기는 약 1만원에 공급된다. 10배 차이 다. 그러다 보니 비용을 아끼려고 열 감지 경보기를 다는 현실이다.

 아파트들은 또 대부분 비상시 옆집으로 대피할 수 있는 내부 통로를 막아 놓았다. 베란다를 통해 옆집으로 건너갈 수 있는 통로다. 얼핏 보면 베란다 한 구석의 창고 같다. 어느 아파트 베란다에나 있는, 문이 달린 빈 공간이다. 사실 이게 비상통로다. 비상시 발로 차 깨고 옆집 베란다로 건너갈 수 있도록 뒤쪽 벽을 얇은 판자로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대부분 시민들은 이를 모르고 창고 삼아 온갖 물건을 들여놓는 게 보통이다. 의정부시 C아파트 12층도 그랬다. 항아리 등을 잔뜩 들여놓았다. 집주인 황모(63)씨는 “불 났을 때 긴급 통로란 사실을 전혀 몰랐다” 고 말했다. 2013년 12월에는 부산의 한 아파트 현관 쪽에서 불이 났을 때 이렇게 베란다를 이용해 대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 일가족 4명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백 회장은 “한쪽 집이 물건을 치워도 옆집이 통로를 막아 놓으면 비상시에 전혀 쓸 수가 없다”며 “아파트 단지 차원에서 이곳에 물건을 두지 않도록 계도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연기가 퍼질 때에 대비한 행동 요령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방독면을 갖추고 있으면 가장 좋고, 그렇지 않을 때는 물에 적신 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린 뒤 자세를 최대한 낮추고 대피하라는 것이었다. 위로 번지는 연기의 특성을 이용해 대피하는 방법이다.

전익진·조혜경 기자
[사진 오종택, 김상선 기자, 김혜원 대학생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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