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웅의 오! 마이 미디어] 언론인들이여, 데이터를 무시하지도 숭배하지도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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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나는 데이터다. 나는 어디에나 있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 내가 먼저 타인에게 말을 거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를 말할 수 있게 하는 자는 따로 있다. 그는 표집이론이나 실험방법론을 신봉하고 R이나 파이썬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보통 사람은 옆에 두고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나는 주로 관찰과 주장 뒤에 숨어 있다. 살다 보니 별일도 다 있다. 요즘 내가 인기란다. 내가 문제란다. 그것도 커서 그렇다고 한다. 내 평생 작아서 염려라는 구박은 들었어도 커서 그렇다니 우습다. 심지어 나를 전문으로 다룬다는 과학자가 새로 생겼다. 데이터 과학자라는데, 약간 당혹스럽다. 나는 세상의 처음부터 모든 지성과 과학자의 친구였는데 이렇게 갑자기 친한 척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를 좋아라 하는 언론인들도 늘었다. 언론인이란 원래 흥미로운 자들이다. 말이 많기 때문이다. 나와 성격이 반대라고 해야겠다. 양극단은 서로 끌어당기나 보다. 나도 그들과 친하고 싶다.

 뉴욕타임스의 ‘업샷’, ESPN의 ‘파이브서티에잇’, 가디언에서 나를 초대해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다. 내게 말을 거는 언론인들이 많아지고, 나를 꾸미고 입혀주는 디자이너도 생겼다. 정말 내가 좋은가 보다. 그러나 내 맘은 편치 않다. 언론인은 사실 나와 별로 가까울 일이 없었다. 그들은 본래 의견을 좋아한다. 예컨대 요즘 경제 사정이 왜 이리 나쁜지 알고 싶은 언론인이 있다고 하자. 또는 그게 누구 책임인지 쓰고 싶은 언론인이 있다고 하자. 그는 보통 경제학자나 전문 관료의 의견을 취재한다. 또는 근로자나 자영업자의 호소를 두루 듣는다. 그리고 쓴다. 가끔 내가 등장하는 학술논문이란 것을 읽기도 하지만, 그건 주로 해당 논문의 저자나 비판자의 의견을 확인하고 싶을 때다.

 요즘 언론인들은 ‘팩트’란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그들은 사실을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다. 내 말을 믿으라. 이건 내가 잘 안다. 왜냐하면 내 본명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고백을 하자면 이렇다. 나는 중립적이지만, 나를 이용하는 자들은 대체로 그렇지 않았다. 나는 객관적이지만, 오직 내 성격을 잘 아는 자들에게만 그렇게 보일 것이다. 나는 유용한 정보일 때도 있지만 동시에 혼란스러운 소음이기도 하다. 이게 나를 이용해서 객관적이고 통찰력 있는 일을 하겠다는 자들을 보면 염려스러운 이유다.

 주제넘게 내가 할 말인지 모르겠지만, 언론인은 언론을 잘하기 위해 다른 무엇인가 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예컨대 시인·수사관·정치인 등이 될 필요가 없다. 상상력이 뛰어나고, 사실을 정확하게 파헤치며, 권력의 향방에 민감한 언론인은 그렇지 않은 언론인보다 분명 더 기회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훌륭한 언론인은 그런 것 때문에 훌륭해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언론인은 과학자가 될 필요가 없다. 내가 봤던 훌륭한 언론인들은 나를 무시한 적도 없지만 내게 아첨하지도 않았다. 나를 주의 깊게 관찰할지언정 숭배하지 않았다. 정의롭고 균형 잡힌 판단력과 뛰어난 표현력을 가진 언론인이라면 애초에 그럴 필요도 없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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