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아시아 영화 일꾼 한국이 키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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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아시아영화아카데미(AFA) 학생들이 26일 HD카메라를 이용해 영화를 제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AFA 제공]

제대로 영화를 배운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영화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뜨겁다는 중국 소녀 주펑쉐(朱峰雪.17). 평소 각별히 친하게 지내는 동네극장 영사기사가 써 준 추천서 한 장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미래의 아시아 영화일꾼을 길러내기 위해 한국 영화계가 힘을 모아 문을 연 '아시아영화아카데미(AFA)'의 1회 입학생으로 뽑혔기 때문이다. 영화 '시네마천국'의 꼬마 주인공 토토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추천서를 본 선발위원들이 그녀의 잠재력을 높이 산 덕분이다.

25일 경기도 남양주 종합촬영소에서 시작한 교육에서 최연소 학생인 그녀는 날마다 영화의 바다에 빠지고 있다. 26일에는 응접실 세트가 설치된 스튜디오에서 난생 처음 고화질 HD카메라도 만져봤다.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영화 찍는 흉내는 내봤지만 영화용 카메라나 세트를 본 건 처음이에요. 전문 용어가 많아 강의는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마음은 무척 흥분됐어요."

이날 밤에는 영화 '오아시스'로 2002년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도 만났다. 뇌성마비 장애인 연기를 실감나게 한 문소리의 연기 비결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오후 11시가 넘어서야 하루 일정이 끝났지만 피곤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려운 기회를 잡았는데 하나라도 더 배워가야 한다"는 게 작지만 당찬 그녀의 대답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10주년 기념사업으로 마련한 3주 과정의 AFA에는 그녀를 비롯해 아시아 17개국 28명이 참여하고 있다. 가까운 중국.일본에서부터 멀리는 아프가니스탄.레바논.이란에서까지 영화를 배우러 한국을 찾아왔다. 42세의 타지키스탄 조감독 출신에서 17세 소녀까지 참가자들의 연령대도 다양하다. 감독진도 쟁쟁하다. 초대 교장은 대만의 허우샤오센(侯孝賢) 감독이며, 태국의 논지 니미부트르 감독과 한국의 박기용 감독이 단편영화 제작을 지도한다. 학생들이 만든 단편영화는 다음달 13일 부산영화제에서 상영할 예정이다.

박 감독은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는 한국 영화계의 활력에 대해 부러워하고 한국을 배우고 싶어한다"며 "이런 교육을 통해 아시아 젊은 영화인들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면 한국 영화계로서도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AFA의 우수 학생은 한국영화아카데미와 동서대학교의 장학생으로 선발돼 한국에서 계속 영화를 공부할 수 있게 된다.

남양주=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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