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의 인사이드 피치] 215. KBO, 삼성 이기는 게 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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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약 3주일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1층 현관에 대형 TV가 설치됐다. 벽걸이형 TV로는 화면이 가장 큰 모델이라고 한다. 이 TV는 그 건물이 야구위원회임을 알게 해 주는 상징적인 기능을 한다. 하루 종일 프로야구 하이라이트나 중계방송을 보여준다. 현관을 드나드는 사람 누구나 시원한 대형 화면을 통해 프로야구에 친숙해진다. 또 TV 자체에도 관심을 갖는다. '이렇게 크고 멋진 TV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한번쯤 하게 한다.

그런데 눈썰미가 조금만 있다면 이 TV 아래쪽 가운데 박힌 알파벳 네 글자를 놓치지 않는다. P. A. V. V. '파브'다. 자연스럽게 프로야구 타이틀 스폰서 '삼성전자'가 떠오른다. 2005 정규시즌은 '2005 파브 프로야구'라고 부른다. 바로 그 '파브' TV다.

그쯤에서 KBO가 시중가격 약 500만원의 이 멋진 TV를 설치하는 데 돈을 들이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관계자에게 물었다. 역시 산 게 아니라 "제공받았다"고 했다. 이건 아니다.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그럴 수도 있는 것을 가지고 꼬투리 잡는다는 생각을 한다면 "No, No", 그 생각이 틀렸다. 정정당당하고, 공명정대해야 할 스포츠에서 이런 문화는 분명 잘못된 인식이다. KBO의 '좋은 게 좋은 거'식 마인드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어 더 미간이 찌푸려진다.

2002년으로 잠깐 돌아가 보자. 삼성-LG의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삼성이 이기면 대구에 새 야구장(어쩌면 돔구장)이 지어진다"는 소문이 그럴듯하게 퍼졌다. 그러자 '이왕이면 삼성이 이기는 게 낫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삼성이 이겼다. 우연의 일치로, 승부가 갈린 6차전에선 LG가 리드하던 상황에 삼성 브리또 타석 때 모호한 스트라이크-볼 판정까지 나왔다. 그러고 보면 그 소문은 삼성이 이기기를 바라는 누가 일부러 퍼뜨렸는지도 모르겠다. 대구에 돔구장이나 새 야구장을 짓는다는 '정설'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없다.

그때를 기점으로 '파브'TV까지, KBO에는 '친(親) 삼성'의 묘한 분위기가 존재한다. 삼성에는 KBO 홍보위원을 3년이나 지낸 선동열 감독이 사령탑을 맡고 있고, 해태 감독 시절 현 KBO 사무총장과 동고동락한 김응룡 사장이 있어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No, No", 이번에도 아니다. 그건 '자연스럽지 못한' 현상이다.

프로야구는 사조직이 아니라 페어플레이 정신이 지배해야 할 스포츠 판이다. 개인 감정이 특정팀에 아무리 우호적이라 해도 그건 사견이어야 한다. 공공연해서는 안 된다. 혹시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면, 승부에 영향을 준다면 그건 결코 옳지 못하다. 출범 때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던 것처럼 프로야구는 아무 꾸밈도 없는 어린이에게 바른 꿈을 줘야 할 거울, 맑은 연못이어야 하지 않은가.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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