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항공화물 찾는데 세관서 2시간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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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며칠 전 부산에서 올라온 친구를 따라 영동에 있는 세관엘 간 적이 있다.
만 10년 동안을 외국에서 살다 돌아와서 서올 지리에 익숙지 않은데다 복잡하고 까다롭다는 한국 세관에 대한 소문을 얼마나 들었는지 친구는 세관까지 가는 차 속에서 이미 긴장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김해공항에서 내렸다며 짐은 왜 서울까지 와서 찾니?』 의아해서 묻는 내 질문에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 하소연을 했다.
『거기서 항공화물로 짐을 부칠 때는 분명히 그 회사지점이 부산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부쳤는데 이곳에 와보니까 서울밖에 없다며 서울까지 가서 찾으래. 그러니 그 차비하며 시간 낭비가 얼마니? 집수리 하느라 몸을 뺄 사이드 없는데 독촉전화가 와서 하는 수 없이 올라왔잖아.』
무조건 손님을 받으려고 그랬는지, 아니면 착각이었는지, 없는 지점을 있다고한 항공사부터가 친구의 신경을 긁고 있었다.
『터무니없이 많은 세금을 내라거나 너무 복잡하면 반송시켜 버릴테야.』
깨끗하고 보기 좋은, 신축건물인 듯한 세관의 문 앞에서부터 친구는 그린 다짐을 하며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선 1층에 있는 항공사에 가서 서류를 만들어 받고, 은행에 가서 돈올 내고 그 영수증을 가지고 다시 항공사에 갔더니 2층에 가서 수속을 하란다. 2층에 가니 다시 아래층에 있는 몇번에 가서 타자로 무얼 쳐오라고 해서 다시 아래층. 그후 다시 2층에 갔다가 거기서 세관직원과 함께 이번엔 지하층에 있는 창고로 갔다. 짐을 검사하기 위해서.
낡은 구두 몇켤레, 헌 디스크, 편지 한묶음, 스케치 몇장 판화용 필름, 실크스크린판, 물감 튜브 몇개….그게 전부였다. 그걸 모두 적고는 다시 2층으로 갔다. 물감 튜브 몇개에 세금을 물어야 된다고 해서 화가이며 대학 강의를 맡게되었다는 친구의 직업까지 구차하게 설명해서 겨우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게 되었는데, 이번엔 대학의 임명장을 복사해서 첨부하란다.
마침 임명장을 가지고 있는 것만도 다행이라 여기고 복사기계가 있다는 옆건물 본관의 지하실까지 뛰었다. 거기서 다시 별관의 2층으로, 다시 1층으로, 2층으로, 지하층으로…. 얼마를 어떻게 오르내렸는지 기억에 없다. 다만 두시간 반을 꼬박 오르락내리락 했다는 것만 안다.
친구는 그 두시간 반동안 내내 짜증을 내다가 웃다가 또 짜증을 내다가 웃었다. 아마 내 일이었다면 틀림없이 나는 그보다 더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어쩐지 나는 이 모든 것에 대한 변명을 해줘야만 될 것처럼 느꼈다.
항공화물회사의 착오에서부터 이 현대식 세관건물의 엄청나게 비능률적인 부서 배치에까지 아마 10년동안 바깥에 나가 있었던 친구에게 집을 지킨 자의 입장에서 변명을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세관에 있는 거의 모든 분들이 의외로 친절했다는 것만이 위안이었다고 할까.
한 집안의 부엌에 있는 조리대도 작업 동선을 고려하여 설치하는 법인데, 어째서 이렇게 불편하게 해놓았나 라는 내 불평에 어느 분이 웃으며 대답했다.『건강에 좋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 모두가 웃긴 했지만…. 글쎄, 사람은 친절한데 건물이 불친절해서야 되겠습니까?
김민숙 ◇약력▲48년 부산출생▲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졸업▲7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바다와 나비병』당선 ▲단편『어느날의 실종』『이민선』『남대문』, 기타 장편『순례하는 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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