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신용이 내 돈을 불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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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대부분의 은행들은 대출할 때 자체 신용평가시스템을 활용해 고객의 신용등급을 7~15등급으로 나눈 뒤 대출 규모와 이자를 차등 적용하고 있다. 담보 없는 신용대출의 경우 최상등급과 최하등급 간 금리차가 최대 7%포인트까지 벌어진다. 주택담보대출은 0.5%포인트까지 차이가 난다.

◆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낳는다=주택담보대출 같은 장기대출의 경우 작은 금리 차이가 20~30년 대출기간으로 보면 엄청난 이자 차이를 낳는다. 조흥은행은 고객의 신용등급을 15등급으로 나누고 9등급 이상 고객에게는 승인한도와 금리를 정상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10등급 이하의 고객에게는 산출금리에 0.1~0.3%포인트를 추가하는 등의 '불이익'을 주고 있다.

만약 5억원짜리 아파트를 사려는 고객이 3억원을 이 은행에서 빌리려고 할 때 최하위권 신용등급을 받았다면 그는 0.3%포인트의 금리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이를 30년간 분할상환(5년 거치)할 때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거치기간의 이자(450만원)와 상환기간의 이자(1128만원)를 합해 모두 1578만원에 달한다. 이는 당초 빌린 돈(3억원)의 5%를 넘어선다. 추가금리를 0.5%포인트까지 적용하는 은행의 경우 추가부담액은 거의 배 가까이 늘어난다. 보통 1년간 담보 없이 빌리는 신용대출은 은행의 경우 최상등급과 최하등급 간 차이가 최대 7%포인트까지 난다.

◆ 노출된 신용정보가 신용등급 좌우="국내 일류기업의 임원인 데다 재산도 많은데 왜 신용등급이 이렇게 나쁜가." 은행의 대출담당자는 고객에게서 이런 불평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금융회사들은 현재 연체 등 불량정보만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량 정보는 주거래 고객이 아니면 알 수 없다. 대기업의 임원이라고 해도 주거래 고객이 아니면 은행들은 고객의 구체적인 신용정보를 알 수 없고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은행마다 같은 고객에 대해 대출 등급이 제각각인 것도 바로 우량정보가 공유되지 않는 데에서 비롯된다.

김성중 우리은행 개인마케팅팀 과장은 "대기업에 근무해 소득이 높은 데다 재산이 많고, 대출 실적이 없으면 높은 신용등급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객은 어떻게 빚을 갚았는지 은행이 알 수 있도록 스스로 신용 시장에 노출시키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신용등급 평가 기준을 보면 은행이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한 은행이 기존고객(급여소득자)의 신용등급을 매기는 항목을 보면 ▶신상정보(직업, 가족, 주택 유무 등) 15% ▶여신정보(소득 대비 부채비율 등) 14% ▶수신.부수거래(고객의 평균잔액 등) 20% ▶ 신용카드 18% ▶신용정보(신용불량건수.신용조회건수 등) 33% 등으로 구성돼 있다. 신상정보보다는 은행거래 등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한 은행 관계자는 "재산 관련 정보는 전체의 3%도 안 된다"고 말했다.

◆ 신용등급 관리하는 방법은=한 은행의 경우 거래하지 않았던 고객에 대한 신용등급을 매길 때 신용정보 비중이 61%를 차지한다. 이 항목에는 신용불량 건수, 최근 6개월 내 신용조회기관 수, 할부금융회사의 조회건수, 저축은행의 조회건수, 백화점 카드 수, 신용카드 개설건수 등이 포함돼 있다. 금융회사가 최근 6개월 내 5회 이상의 신용조회를 했을 경우 은행들은 해당 고객에게 높은 신용등급을 주지 않는다. 특히 저축은행이나 인터넷 대출업체에서 신용조회를 받았을 경우 '요주의 고객'으로 분류한다. 고객이 대출받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는 방증으로 해석한다. 신용카드나 백화점 카드는 너무 많아도 감점이지만 너무 없어도 점수가 깎인다. 신용카드가 없으면 고객이 돈을 빌리고 제때 갚는지 알 수 없고, 신용카드가 4개 이상을 넘으면 '돌려막기'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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