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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안 낳는 가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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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아이 낳기를 꺼리는 젊은 부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child free는 이제 새로운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중앙포토]

"잘 키울 자신 없어서…" # "내 생활 잃기 싫어서…"

영어로 childless(아이 없음)는 좀 슬픈 의미다. 대개 불임 부부를 지칭한다. 그러나 새로 등장한 child-free(아이 안 낳음)라는 단어에는 개인의 의지가 깔려 있다. 결혼이나 출산도 이제 자신의 의지에 따른 선택사항일 뿐이라는 뜻이다. 요즘 우리 주변에도 child-free 가정이 소리없이 늘고 있다. 그러나 당당하게 child-free를 부르짖기에는 여전히 외부 압력이 만만치 않다. '출산 파업'이라는 비난도 따른다. 이번 인터뷰 대상자들도 그래서인지 절반 이상이 익명을 요구했다. child-free 가족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이동석(38.회사원)=결혼한 지 7년이 넘었지만 아직 아이가 없다. 결혼 전부터 아이를 갖지 않을 생각이었다. 처음 아내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지금은 아이를 갖지 말자는 내 의견에 불만이 없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혹 아쉬움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딩크(DINK:Double Income No Kids=아이 없는 맞벌이)족'이 되기로 결심한 데는 이유가 있다. 정해진 철로를 따라가듯이 공식대로 사는 삶이 내키지 않았다. 때가 되면 대학에 가고, 때가 되면 결혼하고, 때가 되면 아이를 낳고…. 그런 식으로 쫓기듯 살다간 정작 '나'를 잃어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사회적인 시선이나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고 생각해봤다. 결국 결혼도 아이도 선택이라는 결론이었다. 결혼은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 아이 역시 낳을 수도 있고, 안 낳고 살 수도 있다. 나는 결혼을 선택했고, 아이는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다.

가끔 허전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럴 때면 조카들을 보러간다. 삼촌으로서, 숙모로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다. 우리 부부는 그 정도로 만족한다. 대신 우리는 일과 여유를 보다 자유롭게 즐긴다. 인라인 스케이트.패러 글라이딩.수상스키와 비슷한 웨이크 보드 등 주말을 레포츠로 보낸다. "아이가 없으면 갈수록 부부 사이에 대화 소재가 줄어든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우리 생각은 다르다. 비슷한 취미를 즐기는 우리 부부에겐 함께 나눌 얘깃거리가 너무 많다.

나는 회사원, 아내는 중학교 교사다. 굳이 아이를 통해서만 삶의 의미를 찾는 건 아니라고 본다.

▶아내 이모(35.여.직장인)씨 / 남편 최모(36.대학원 박사과정)씨=학교 선배였던 남편과 6년 전 결혼했다. '아이를 낳지 말자'고 합의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학생 신분인 남편이나 한참 직장생활 중인 내 형편상 아이 갖기를 미루다 자연스레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제는 어느 사이에 '과연 우리 부부가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내가 10년째 직장생활을 하지만, 남편은 공부를 하고 있어 아직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하다. 매달 수십만원의 과외비부터 마련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내 아이가 돈 때문에 기죽는 모습은 절대 보고 싶지 않다.

남편이 공부를 마친 다음에는 좀 나아지겠지만, 우리 부모 세대가 베풀었던 만큼 아이에게 베풀기는 힘들 것 같다. 양육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도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이번 추석에도 아이를 빨리 낳으라는 시부모님의 성화에 시달려야 했다. 시어머니는 내게 "혹시 아이가 들어서지 않는 몸 아니냐"고 걱정스레 묻기까지 하셨다. 남편이 2대 독자이기 때문에 '혹시 대가 끊기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드시는 모양이다.

아이를 갖지 않는 데 동의한 남편도, 아이가 있는 집에라도 다녀오면 은근히 투정을 부린다. 나 역시 아이가 없다는 사실이 불안할 때도 있다. 부부가 위험한 고비에 들어설 때 아이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든든한 안전판이 된다고들 하는데…. 그래서 요즘은 남편과 최대한 많은 추억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식은 낳아도 후회, 안 낳아도 후회'라지만 새 생명을 태어나게 해놓고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박수진(36.여.회사원)=부모님은 지금도 보챈다. "어서 아이를 낳아야지. 너희 제사는 누가 지내려고…." 그러나 남편과 나는 결혼할 때부터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합의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 없다. 정말 일하고 싶은데도 아이 볼 사람이 없어 직장을 그만두고, 열악한 보육환경 때문에 하루하루 숨막히게 사는 주위 친구들을 볼 때면 이런 생각이 확신으로 굳어진다.

모르는 사람들은 말한다. "너희 부부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판단 아니야"라고. 그러나 우리 생각은 다르다.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 물론 아이를 낳으면 최선을 다해 보살펴야 한다. 그건 의무이자 도리다. 그러나 '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는 명제는 우리에게 의무도, 도리도 아니다. 우린 다만 아이가 없는 쪽이 더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그런데 처음 만나는 사람도 종종 묻는다. "결혼은 하셨어요? 아이는요?" "없는데요"라고 대답하면 상대는 난감해한다. 마치 아픈 상처라도 건드린 듯 말이다. 이제 다른 사람들도 '나와 다른 삶을 살 수도 있구나'란 생각을 담담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으니 말이다.

우리에게도 삶의 계획이 있다. 나와 남편은 노후를 자식 아닌 연금에 의존할 계획이다. 그때 여유가 된다면 실버타운에 입주할 생각이다. 그래서 수입의 상당액을 연금보험과 적금에 넣고 있다. 그리고 주말에는 봉사 활동도 하고, 주말농장도 가꾸고 싶다. 어떤 이는 묻는다. "살다가 아이가 정말 갖고 싶어지면 어떻게 할 거죠?" 그럼 낳을 생각이다. 그러나 아직은 그런 생각이 없다. 남편과 나, 지금도 아주 행복하기 때문이다.

▶김선화(가명.38.인테리어 디자이너)씨=우리 부부는 연애만 꼬박 10년 한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결혼 뒤에도 평생을 연애하듯 살자고 다짐했었다. 알콩달콩 단 둘이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에 앞서 "아이는 갖지 않겠다"고 양가에 선언했다. 처음에는 양쪽 부모님들이 만류하고 호통도 치셨다. 결혼을 못하게 말리겠다고도 하셨다. 손자 욕심이 컸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뜻을 굽힐 수는 없었다.

아이가 있으면 아무래도 내 인생의 일부는 아이를 위해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크다는 주변의 말에도 신경이 쓰였다. 내 시간의 일부를 아이에게 내주고 돈까지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면 굳이 아이를 가져 얻을 수 있는 게 크지 않다고 봤다.

부부가 각자 사회생활에서 성취감도 맛보고 경제적으로도 여유 있으면 그게 사는 행복이 아닌가 싶다. 최근에 우리 부부는 주말마다 전국 맛집지도를 들고 돌아다니는 게 취미다. 아이가 있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10년 연애에 결혼 10년차를 맞이하지만 아이가 없으니 꼭 20년째 연애만 하고 있는 기분이다. 우리 부부는 최신 유행하는 청바지와 미키마우스 등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즐겨 입는다. 우리가 아이를 가진 부부라면 어디 가당키나 한 패션인가. 아이가 없으니 스트레스도 적고 항상 젊게 살 수 있는 것 같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말은 아닌가 보다.

▶최모(32.여.회사원)씨=결혼한 지 5개월이다. 남편감을 고를 때 첫째 조건이 아이를 갖지 않는 데 동의하느냐를 따졌다. 지금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아이는 낳지 않고 부부끼리 편안하고 여유롭게 살자'는 데 합의한 뒤 교제를 시작했다.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내린 결론이었다. 결혼이 늦은 편이어서 주변 친구들이나 형제들의 결혼생활을 엿볼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아이를 키우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수입의 대부분을 아이에게 쏟아붓는 모습을 보니 솔직히 저렇게 살고도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아이를 위해 쉽게 포기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부부가 아이를 별 탈 없이 키울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마땅치 않다는 것도 선뜻 아이를 갖겠다고 나설 수 없는 이유였다. 개인의 희생을 통해서만 새로운 사회 구성원이 길러진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 때문에 먹을 것 못 먹고, 누릴 것 못 누리는 사람들이 과연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낄까 의문이 든다.

'무자식 원칙'을 선언할 때 걸림돌은 역시 부모님들이었다. 아직도 수시로 전화를 걸어 생각이 바뀌지 않았는지 떠보신다. 하지만 우리의 원칙은 확고하다. 최후의 카드도 마련해뒀다. "험한 세상에 이 나이까지 자살하지 않고 살아준 것만 해도 효도 아니냐. 욕심 많게 손자까지 원하시냐"고 빼째라는 식으로 버틸 작정이다. 그래도 안 된다면 우리 부부 가운데 한쪽에 문제가 있다는 '가짜 불임'으로 부모님들을 속이기로 했다. 주변 사람에게 최대한 상처를 주지 않는 한에서 우리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정리=백성호.정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