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가 있는 아침 ] - 어머니 날 낳으시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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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어머니 날 낳으시고 정일근(1958~ )

오줌 마려워 잠 깼는데 아버지 어머니 열심히 사랑 나누고 계신다, 나는 큰 죄 지은 것처럼 가슴이 뛰고 쿵쾅쿵쾅 피가 끓어 벽으로 돌아누워 쿨쿨 잠든 척한다, 태어나 나의 첫 거짓말은 깊이 잠든 것처럼 들숨 날숨 고른 숨소리 유지하는 것, 하지만 오줌 마려워 빳빳해진 일곱 살 미운 내 고추 감출 수가 없다.

어머니 내가 잠 깬 것 처음부터 알고 계신다, 사랑이 끝나고 밤꽃내음 나는 어머니 내 고추 꺼내 요강에 오줌 누인다, 나는 귀찮은 듯 잠투정을 부린다, 태어나 나의 첫 연기는 잠자다 깨어난 것처럼 잠투정 부리는 것, 하지만 어머니 다 아신다, 어머니 몸에서 내 몸 만들어졌으니 어머니 부엌살림처럼 내 몸 낱낱이 다 알고 계신다.


하하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시를 읽다가 때로는 이런 재미도 있어야 한다. 시는 고통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이런 근원적 사랑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 엄마와 어린 아들 간의 천륜의 사랑이 끈적하고 눈물겹고 엄숙하다. 젊은 어머니의 뜨겁고 넓은 마음과 개구쟁이 어린 아들의 다 아는 척하는 익살스러운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왜 내 어머니는 이런 '거룩한 추억'을 내게 안 주셨는지 몰라. 엄마 따라 여탕에 참 많이 다녔어도 왜 그 기억이 조금도 안 나는지 몰라. 그런데 정일근 시인은 그 기억이 또렷할 것 같기만 하다. 재미있고 좋은 시 또 한 편 쓸 것만 같다.

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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