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옴부즈맨 칼럼

공직자 청렴성 비판 더 후련하게 못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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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요즘 신문에 공직자들의 도덕성이나 청렴성에 대한 기사가 심심치 않게 실린다. 최근에도 총리의 주말농장 부동산투기 의혹이 있었고 대법원장 후보의 수십억대 사건수임에 대한 전관예우 의혹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기사를 읽다보면 독자로서는 속이 시원하기보다는 여전히 답답하고 아쉬움이 남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해당 기사가 공직자의 도덕성 문제를 날카롭게 파고들기보다는 단지 변죽만 울리다 만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긴 기자가 공직자를 비판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공직자들은 작은 기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언론에 대해 거세게 항의를 하거나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대통령께서도 언론을 상대로 한 소송을 마다하지 않으시는 형편이니, 우리나라 전체 명예훼손소송 중 공직자가 제기한 소송이 3분의 1이 넘는다는 말이 허언이 아닌 듯싶다. 그런데 이렇게 한번 소송이 제기되면, 기자들로서는 언론중재위원회다 법정이다 수시로 끌려다녀야 하고, 깨알같이 적어놓은 취재수첩을 다시 찾아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 소송 준비에 밤을 새워도 혹여 손해배상판결이라도 받는 날에는 회사 내에서 죄인처럼 고개를 들지도 못한다. 소송이 많아지면 자연히 적도 많아지고 주변으로부터 사고뭉치라는 별명만 얻을 뿐이다. 정계로 나가보려는 야망이 있는 기자들에게는 공직자들과의 한판 승부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또 요즘엔 신문사마다 자문변호사라는 분들이 있어 기사의 내용이 조금이라도 날카롭다 싶으면 미리미리 가지치기를 해버린다. 이러다 보니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겠다는 처음의 의욕은 쉽게 시들고, 날카로운 연필도 스스로 알아서 뭉툭하게 갈아 버리고 싶은 유혹이 생겨나게 된다.

사실 명예훼손소송으로 인한 언론의 움츠리기(chilling effect) 문제는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 형성 과정에서 각국의 법원과 법률가들이 가장 우려했던 현상 중 하나다. 특히 공직자가 관련된 보도에 관해서는 공직자에 대한 언론의 자유를 더 강도 높게 보호해 주려는 움직임이 진행되어 왔다. 우리 헌법재판소도 이미 1999년 "시간과 싸우는 신문 보도에 오류를 수반하는 표현은, 사상과 의견에 대한 아무런 제한 없는 자유로운 표현을 보장하는 데 따른 불가피한 결과이고 이런 표현도 자유토론과 진실 확인에 필요한 것이므로 함께 보호되어야 한다"라고 선언해 기자들을 무오류 보도의 강박관념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우리 대법원도 2003년 "공직자의 도덕성.청렴성에 대하여는 국민과 정당의 감시기능이 필요함에 비추어 볼 때, 그 점에 관한 의혹 제기는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닌 한 쉽게 책임을 추궁하여서는 안 된다"고 선언함으로써 기자들에게 광범위한 면책특권을 새로이 부여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많은 언론인이 공직자로부터의 소송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공직자에 대한 비판에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는 새로운 대법관.국회의원.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일정들이 남아 있고, 그 과정에서 공직 후보자들의 도덕성.청렴성을 검증하고 비판해야 할 중요한 책임은 언론의 어깨 위에 있다. 부패하고 비도덕적인 공직자에 대하여는 중앙일보의 기자들만이라도 시퍼렇게 날이 선 필봉을 들이대어야 할 때다.

최정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