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보편적 문제 해결 위해 글로벌 규범 확립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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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아탈리(71)는 좀처럼 비교 대상을 찾기 힘든 인물이다.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 특보를 지내고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을 설립해 프랑스와 유럽 정계에서 영향력이 막강하다. 올랑드 현 대통령의 정계 입문을 도운 것도, 사회당 정부에서 시장주의 개혁에 나선 38살 경제장관 에마뉘엘 마크롱을 천거한 것도 그다. 하지만 아탈리는 정치뿐 아니라 문학ㆍ철학ㆍ예술에도 조예가 깊어 수준높은 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 정세를 읽는 통찰력도 뛰어나 아탈리를 미래학자로 소개하는 사람도 많다. 2015년 세계가 어떻게 움직일지 조언을 구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인물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선 잘 모를 것 같아 장황한 설명을 곁들였는데 의외로 사건의 전말을 잘 알고 있어 놀랐다.

-저서 『세계는 누가 지배할 것인가』에서 초국적 정부 설립을 제안했다. 세계화에 대한 단상은.
“금융ㆍ자원ㆍ환경 등 인류가 보편적으로 직면한 문제들은 한 나라의 정부만으론 해결하기 어렵다. 2011년 그 책을 펴낸 후 초국적 협력에 일부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여러 국제기구 가운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정도만 효율적으로 역할을 수행한 것 같다. 특히 조세 투명성 분야의 기여가 돋보였다. 국가를 초월한 글로벌 법 체계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어떻게 보면 초국적 정부보다 글로벌 법 체계가 우선이다. 세금ㆍ기후변화ㆍ사법정의 등의 분야에서 전 세계가 공통으로 집행할 수 있는 보편적인 규범을 마련해야 한다.”

-2014년을 뜨겁게 달군 프랑스 경제학자 피케티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피케티의 주장들은 이미 알려져 있던 게 많다. 나는 2006년 출간한 『미래의 물결』에서 (방대한 데이터와 함께) 전 지구적 불평등 증가에 대해 언급했다. 피케티는 그런 불평등이 더 심화하고 있다는 걸 입증한 것뿐이다. 불평등이 심화하는 건, 시장은 세계화됐는데 정치는 국가 경계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이건 굉장히 불안한 상황이고, 국가 경계를 넘는 글로벌 법 체계가 마련되기 전까지 지속할 것이다.”

-당신은 세계 경제위기가 7년에 한 번씩 찾아왔고 2015년이 그런 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러시아와 서방 세계가 계속 갈등을 이어간다면, 또 어느 한쪽이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면, 세계 경제위기 또는 전쟁 상황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경기 침체를 겪는 유로존의 경우 유럽중앙은행(ECB)이 올 상반기에 반드시 강력한 양적완화를 단행해야 한다. 진정한 연방제를 위한 핵심적인 조직 개혁도 도움이 될 것이다. 유로 채권 발행이나 EU 재무부 설립을 통한 진정한 통화ㆍ경제 통합이 필요하다.”

-중국 경제는 어떻게 될까.
“중국은 경제 성장도 중요하지만 복지 시스템 확충과 같은 국내 발전에 힘쓰며 내실을 다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경제의 핵심 요소인 부패 척결과 위안화 호환성(currency convertibility)을 위해서도 노력할 것이다. 이런 노력들은 결국 점점 민주화에 가깝게 전개될 것이고, 중국은 타이완 모델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중국이 홍콩과 통합한 것처럼 타이완과도 결국 상호적이고 긍정적이며 내실있는 방법으로 통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아베노믹스는 어떤 결과를 낳을까.
“우선 안정된 정부를 갖게 된 일본을 축하하고 싶다. 아베노믹스의 성패는 장기적으로 일본의 인구 구조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안정적인 인구 구조를 갖춰야 경제 성장과 기술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중국과 건강한 관계를 설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전후 프랑스와 독일처럼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한국은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 해법으로 스웨덴ㆍ프랑스 등의 모델이 거론되는데.
“프랑스의 출산율은 유럽 국가 중 최고다. 개인적으로 (돈을 쥐여주는) 스웨덴 모델보다, 프랑스 모델이 한국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출산율이 높은 건 최고 수준의 보육 시스템을 값싸게 제공하는 것, 여성이 육아에 매몰되지 않고 자기 커리어를 추구할 수 있는 것, 이 두 가지 때문이다. 한국은 저출산 문제를 복지 문제라기보다 인구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보육ㆍ주택 정책이 따로 놀지 않게 종합적이고 집중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물론 이런 노력들은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인내가 필요하다.”

-당신은 올랑드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사르코지 정부에서도 경제정책을 주도했다. 현실주의자인가.
“나는 꿈이 있는 실용주의자다. 나에겐 프랑스와 유럽, 전 세계에 적용 가능한 대담한 아이디어들이 있다. 내가 보기엔 나의 정치적 영향력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작다. 나의 아이디어들 중에 현실화되지 못한 게 아직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자크 아탈리 1943년 당시 프랑스령이었던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향수를 파는 상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13세 때 파리로 이주, 에콜 폴리테크니크·파리정치대학(Sciences Po)·국립행정학교(ENA) 등을 졸업했다. 경제학 박사. 1981년 미테랑 대통령이 당선되자 1990년까지 특별보좌관으로 일하며 정책을 총괄했다. 이후 동유럽 재건을 돕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컨설팅 회사 아탈리&아소시에, 마이크로 파이낸스 재단 '플라넷 피낭스'를 차례로 설립했다. 2007년엔 사르코지 대통령이 성장촉진위원장으로 임명할 정도로 좌우를 넘나들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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