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의 낙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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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독의회 선거사상 기민당세력(CDU/CSU)의 두번째 승리라는 6일의 총선에서 그 당수이자 수상인 「헬무트·콜」이 고향 선거구인 루트비히하벤 지역구 선거에서 1.3%의 차이로 사민당 후보에 패배했다.
루트비히하벤이란 도시는 화약·기계공업 도시로 공장노동자들이 주류를 이루는 전통적인 사민당의 아성이어서 「콜」수상은 이번 패배로 3회연속 낙선의 쓰라린 기록을 갖게됐다.
그런데도 신문방송들은 이번 선거가 『「콜」의 대승리』라고 법석이고, 당사자인「콜」수상도 싱글벙글, 서운한 빛이라곤 찾을 수 없다.
서독의 선거제도는 웬만한 거물정치인이면 지역선거구민의 눈치를 보거나 투표성향에는 신경을 쓰지않고 중앙정계에서 전국적인 활동을 할수 있는 길을 마련해 놓았다.
바로 「지역대표제」와 「비례대표제」의 병행이라는 안전판이다.
물론 이 비례대표제의 원래 목적은 거물정치인의 지역 선거구로부터의 「피신」이나 「보신」에 있는 것은 아니다.
큰 정당 뿐 아니라 작은 정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소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그런뎨 이게 거물정치인의 정치생명을 구원해주는 부수적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서독의 투표용지에는 2개의 투표란이 있다.
하나는 지역구의 직접투표란 (제1투표)이고 또 하나는 등록된 비례후보를 게시한 각 정당에 대한 투표란(제2투표)이다.
이 투표에 따라 의석의 절반은 지역구선거로 직접선출하고 난 후 전체의석을 다시 전국적인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배분, 지역의석을 뺀 나머지가 비례대표의석이 된다.
이때문에 지역에서 가장 많은 당선자를 냈다고 비례대표의석 배분도 그만큼 많아지지는 않는다.
이번선거에서도 기민·기두당은 48.8%를 득표하고도 38.2%득표의 사민당보다 비례대표의석수가 61석이나 적은 64석만을 배정 받았다.
기민·기두는 지역구에서 이미 1백80석을 확보했기 때문에 비래 대표를 합치면 2백석으로 전체의회 의석에 대한 비율은 제 2투표 득표율 48.8%와 같다.
이런 제도 덕분에 지역선거구에선 한사람도 당선자를 내지 못하더라도 전국적으로 5%이상을 득표하면 어느 정당이건 그 비율만큼 의석을 배정받을 수 있다.
자민당(FDP)과 녹색당이 지역구당선 없이도 의회에 진출한 것이 바로 그런 예다.
서독의 자민당이 20년 넘게 5∼10%안팎의 득표율로 제 3당의 위치를 갖고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며 큰 정당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선거 제도덕이다.
흔히 정치 후진국에서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때 정치적 목적을 떠나 순수한 동기에서 이런 제도의 강점을 한번쯤 고려해보면 어떨까 하는게 서독선거를 지켜보며 기자가 느낀점이었다.【김간수 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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