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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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지용, 김기림, 백우, 박태원, 정인택, 안회남. 한매는 인구에 회자됐으나 지금은 잊혀진 이들이다.
그러나 잊혀져 버릴수 만은 없는 이름도 있다. 요즘 다시 그 이름이 문단의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북으로 끌려간 문인들.
주로 남한땅에 있다가 북괴가 후퇴하면서 끌려간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아예 북한 땅에서 해방을 맞고 옴짝달싹 못하고 저들에게 붙잡혀 있던 사람도 있다.
백석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물론「납북작가」가 앞의 여섯 사람만은 아니다. 그 수는 더 많다.
하지만 한국문인협회는 우선 그 여섯 명의 작품을 「해금」하자고 나서고 있다.
그들의 납북사실이 분명하고, 그들의 작품과 작가정신이 순수하며, 우리 민족문학사의 중요한 유산으로서 그들의 존재가 너무 두드러진 사람들이다.
정지용은 한국시사에서 현대성을 위해 선두에선 시인으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감각적인 시어의 구사와 순수한 서정성이 늘 그의 시에 나타나 있었다.
가톨릭 신자로서 기도적인 서정시편도 남겼다.
그와 합께 모더니즘 시운동의 기수 김기림도 기억된다. 시어의 시각화와 회화화에 뛰어난 재주를 보여 언어의「요술장이」란 평가를 얻기도 했다.
그런 기교적 경향 때문에 그는 남노당계 작가 임화로부터 「극단적으로 반사회적인 경향을 띠었다」는 비판을 받은 적도 있다.
더우기 『눌박한 민속담을 듣고, 소박한 시골 풍경화를 보고, 구수한 흙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고 하는 평가를 받은 시인 백석의 사상성은 더 의심할 바 없다.
소설가 박태원은 『천변풍경』 과『소설가 구보씨의 하루』로 한국의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의 신경지를 개척했다.
청계천 부근 풍경을 마치 사진을 찍둣이 있는 그대로, 보는 그대로 스케치한『천변풍경』은 우리 신문학사에 기념비로 남기에 부족함이 없다. 정인택과 안회남의 소설들도 우리 국문학사에 오래 기억 될 것이 틀림없다.
문협의 「납북작가 대책위원회」가 유독 이 여섯 사람을 꼽고 나온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작품이 우리 문학사에 뚜렷한 위치를 점해야 하고, 작가가 인간과 사상면에서 순수성이 가장 잘 보장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보장된 인물로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소설가 이태준, 허전, 최명익이다.
또 조금 의심스런 행적을 가진 사람도 광복이전의 작품활동만을 따로 떼어내 「해금」의 폭을 넓힐 수도 있다. 모두 우리민족문학의 폭과 깊이를 더하고 우리문학의 정통성을 확보하자는 뜻이다.
지용의 시와 구보의 소설을 읽으며 개방사회 속에서 새삼 민족적 긍지를 찾을 수 있다면 구태여 마다할 것은 없다. 신중한 논의가 있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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