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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핵 발생 '쉬쉬' 해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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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결핵은 1950년대만 하더라도 사망 순위 1위를 차지한 무서운 질환이었다. 65년 전국실태조사에서 전 인구의 5.1%가 활동성 폐결핵을 앓고 있을 정도로 많았다.

그 뒤 결핵 관리체계가 잘 정비되고, 경제성장에 따른 영양 상태와 위생 상태의 개선, '리팜핀' 같은 강력한 항결핵제의 사용 등으로 결핵 환자는 꾸준히 감소했다. 그런데 2004년 결핵정보감시체계에 신고된 신환자 수는 3만153명으로(인구 10만 명당 65.4명) 그전 해에 비해 오히려 816명이 증가했다.

아직까지 발견된 환자 100%가 신고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국의 적극적인 노력에 따른 신고율 향상이 주요인이다. 또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결핵 감소 추세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이러한 감소 추세의 둔화는 결핵 감염 위험률이 떨어지면서 인구의 고령화와 더불어 결핵 감염자가 고령층에 주로 분포함으로써 발생한다. 현재 일본.홍콩.싱가포르 등이 그러한 상황을 맞고 있다.

이처럼 결핵은 '정체기'가 되면 발병 고위험군(마약 상용자, 에이즈 감염자, 노숙자, 알코올 중독자)에서 발생하거나 일반인 사이에서 소집단으로 발생하는 사례가 증가하게 된다. 결핵의 소집단 발생은 한 환자로부터 감염돼 여러 사람이 발병하는 것으로 젊은 연령층에 많다. 또한 환자가 병원을 찾는 것도 늦을뿐더러 의사도 진단을 늦게 하는 경향이 있어 주위 사람에게 전파시키는 기회를 오래 갖게 된다. 이렇게 결핵이 소집단 발병하는 것은 결핵균에 자연적으로 노출돼 면역력을 획득할 기회가 적어지면서 집단 면역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최근 집단 내 결핵 유행 사례가 수년 전부터 꾸준하게 보고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선 일반 시민의 인식 전환이 요구된다. 지난해 한 지방의 보육사가 전염성 결핵 환자임이 밝혀져 큰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다. 그 경위는 다음과 같다. 현재 국가결핵관리 지침에는 학교, 영유아 보육시설, 수용시설의 교사, 보육사 또는 직원 중에서 전염성 결핵 환자가 발생한 경우에는 집단 내 결핵 유행을 의심하고 역학조사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을 받은 보건소의 결핵 담당 보건요원이 병원에서 결핵으로 진단된 환자가 신고됨에 따라 그 보건소에 구축된 건강검진 대상자의 명단과 대조하던 중 보육시설 종사자임을 확인했다.

즉시 그 환자와 연락해 추가 조사를 했으며 환자가 근무했던 보육시설의 원아, 보육시설 종사자에 대해 적절한 역학조사를 실시했다. 불행히도 상당수의 원아들이 결핵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나 예방화학치료를 받게 됐으며 보호자들이 불안에 떨었다. 그 보건요원이 신고된 환자만을 단순히 접수했으면 모르고 넘어갔을 수도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일을 처리해 문제가 알려지게 됐다. 하지만 그 요원은 집단 내 결핵 유행을 밝혀내 큰 불행을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보호자들로부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고 원망을 들어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됐고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소집단 발생은 일부 학교에서도 발생하곤 하는데 학교 당국자는 학교 이미지 실추를 우려해 역학조사를 반기지 않는 실정이며 가능한 한 조사 없이 그대로 덮고 넘어가기를 바란다. 이러한 실정에서는 막을 수 있는 제2, 제3의 환자가 발생하고 결핵은 감소하지 않을 것이다.

집단 내 결핵 유행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선 국가에서도 전염성 환자에 대한 역학조사를 확대 실시해야 한다. 결핵은 누구나 걸릴 수 있고 치료를 하면 전염성이 곧 소실되는 질환이다. 일반 시민도 주위에 환자가 있을 경우 역학조사에 적극 호응하고 시설의 담당자도 그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인식 전환이 절실히 필요하다.

김희진 대한결핵협회 결핵연구원 기술협력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