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없는 기업연구소 7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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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국내 기업연구소 다섯 곳 중 네 곳에는 박사가 한명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12일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이하 산기협)가 발표한 '2002년도 박사 연구원 실태'에 따르면 2002년 말 현재 9천7백5개 기업 연구소 중 78.1%에 박사 연구원이 없었다. 중소기업 연구소 중에는 81.6%가, 대기업 연구소도 절반 가까운 41.4%가 박사 연구원을 갖지 못했다.

전체 기업 연구원 중 박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5.0%였다.

산기협 측은 "기업들이 인건비가 싼 편인 젊은 연구원을 고용해 상품화에만 매달리고, 전문지식을 쌓은 박사들을 활용해 기초기술을 개발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약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모나미.BYC 등 유명 기업의 연구소에도 지난해 말 현재 박사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OB맥주 등 외국계 기업에서도 박사를 찾아볼 수 없었다. 외국계 기업들이 고급 인력을 활용한 본격적인 연구개발은 본사에서 하고 한국에서는 현지에 맞는 제품을 만들기 위한 응용 개발 정도에 그치는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임금이 깎이는 것을 감수하면서 기업을 떠나 대학으로 가는 박사들도 있다. 박사를 딴 뒤 손꼽히는 대기업 연구소에서 10년간 일하다 지난해 서울대 교수로 옮긴 K씨(41)는 "지금 받는 돈은 기업에 있을 때의 절반이 안된다"고 말한다.

그는 또 "기업은 큰 이익이 될 가능성이 있더라도 장기적 연구는 반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좋은 성과를 낼 기회를 놓치기 일쑤고, 이에 실망한 고급 두뇌들이 기업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임금이 낮더라도 대학을 찾다보니 우리나라의 고급 과학기술 인력은 대학에만 몰려 있다. 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이공계 박사의 72.6%가 대학에 있으며, 기업체에는 14.8% 뿐이다. 미국은 박사의 35% 정도가 기업에 있다.

고급 연구인력 부족은 기업체의 국제경쟁력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MIT대 발행 기술전문지인 '테크놀로지 리뷰'가 지난해 발표한 '2002년 분야별 기업 기술력 평가'에 따르면 분야별로 50위 안에 든 것은 삼성전자(전자부문 5위)와 LG전자(전자 19위) 뿐이었다. 자동차.컴퓨터.통신.화학 등에서는 순위에 오르지 못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조황희 박사는 "고급 연구개발 능력을 갖춘 일부 기업만 국제 경쟁을 헤쳐나갈 것이며 우리나라 경제는 이들 몇몇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

***바로잡습니다

5월 13일자 E5면 '박사 없는 기업연구소 78%'기사 중 GM대우자동차 연구소에 박사가 없다고 했으나, 이에 대해 GM대우차 측이 "41명의 박사 연구원이 있다"고 밝혀와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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