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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돌 흰돌] 일본 바둑 일으킨 '불길한 3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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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끝없는 동형 반복으로 무승부가 나는 케이스는 두 가지, 즉 장생(長生)과 3패다. 4패나 5패도 3패와 마찬가지다. 이중 장생은 길하고 3패는 불길한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일본 고이즈미 총리가 전국시대의 효웅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전술을 그대로 따라 선거에서 대승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미망(迷妄)을 끊는다"는 한마디로 유명한 오다는 단순 명쾌한 전법으로 전국을 거의 통일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효노사(本能寺)에서 본인방 산샤(算砂)와 그의 라이벌이 두는 바둑을 구경한 직후 부하의 배신으로 살해됐다. 그 바둑은 공교롭게도 3패가 나와 무승부가 됐고 이후 3패는 불길하다는 속설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의외로 일본 바둑을 중흥시키는 계기가 된다. 접근이 금지된 오다의 시신을 산샤가 목숨을 걸고 수습했는데 이후 오다의 부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반격에 성공한 뒤 산샤를 군사(軍師)로 중용했고 그를 위해 전국바둑대회를 열어 봉록을 주는 등 바둑이 본격적으로 빛을 보게 되는 것이다.

장생은 3패보다 훨씬 진귀한 형태로 중국 고서에선 100만 판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실전에선 1993년 일본 본인방전에서 한번 나온 적이 있다. 3패는 삼성화재배 등 국내에서도 몇 차례 나온 적이 있고 특히 조치훈 9단은 왕리청(王立誠) 9단의 명인전 등 도전기에서만 두 번이나 3패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창호 9단은 '3패 불길'이란 속설을 몰랐다고 말하는데 만약 이를 알았다면 남방장성배의 마지막 장면이 어찌 되었을지 궁금하다.

장생(長生)의 실례

<1도>=흑1로 먹여쳐 백 대마를 잡으러 왔다. 흑A로 두면 오궁도화로 사망. 그러나 백은 이곳에 들어갈 수 없어 고민이다. 사는 길은 없을까.

<2도>=사실은 백1로 자살수를 두는 게 유일한 활로가 된다. 흑2로 두점을 따내면 백도 흑 두점을 따낼 수 있다.

<3도>=<2도> 이후의 그림인데 백?로 흑 두점을 따내니 <1도>와 같아졌다. 흑1로 먹여치면 백2로 들어가 끝없이 동형 반복이 이뤄진다. 이것이 바로 장생이다. 그러나 흑이 이 대마를 잡지 않아도 이긴다면, 또 백이 이 대마를 죽여도 이긴다면 장생은 나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3패나 장생은 승부와 유관할 때 존재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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