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경제포럼: 우리경제 현실인식과 정책 방향

한덕수 경제부총리 발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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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하반기 들어 우리 경제는 수출이 두 자릿수 증가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내수도 민간소비를 중심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 경제성장이 잠재성장률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회복되고 이러한 기조가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재정정책 등 총수요관리 정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내년 이후에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계속하려면 경기 관리만으로는 부족하다.

잠재성장률을 높이려면 노동과 자본의 투입을 늘리고 생산성을 증가시키면 된다. 그러나 이는 말처럼 쉬운 과제는 아니다. 어느새 우리 경제는 자본투입량을 늘리면 생산성도 함께 증가함으로써 일자리가 늘어나던 경제발전 단계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미 자동차.조선.반도체 등 주력 업종들에서는 생산성 증가가 반드시 고용 증대를 수반하지 않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또 단기적으로 오히려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결과도 나타나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 대기업.금융부문에서 현격한 생산성 증가가 이뤄졌지만, 이는 뼈아픈 구조조정의 결과다.

현재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은 선진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생산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부문에서 생산성을 높이려면 단기적으로 일자리 감축도 감내해야만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제조업 부문에서 생산성 향상과 일자리 창출이 제약을 받게 되는 상황에서 서비스업은 새로운 부가가치와 고용을 창출하는 분야가 될 것이다. 이는 우리에 앞서 경제발전과 소득증대를 이룩한 선진국들의 공통된 경험이기도 하다.

서비스업 중 소득 수준 향상에 따라 고급화.다양화돼 가는 의료.교육 등 사회 서비스업 분야는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사회서비스업의 공공성이 지나치게 강조될수록 산업으로의 발전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근 우리 경제에서 급증하는 해외소비도 이를 방증하고 있다.

노동력의 공급 문제도 풀어야할 과제다. 극심한 저출산 추세 속에서 2016년께는 생산 가능 인구 자체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출산.육아 등 모성비용을 우리 사회가 분담해야 하지만 정부 재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재정 지원과 함께 규제가 지속된다면 보육 산업이 우리 경제의 부가가치원으로서 발전하는 데도 지장을 줄 수 있다.

사회안전망에 대한 인식도 중요하다. 사회안전망 지출이 우리 경제의 생산성과 효율성 추구를 뒷받침하기 위한 사회적 투자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려면 재정 소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늘어나는 재정 소요를 건전성을 해치지 않고 인플레를 자극하지 않는 방법으로 조달하기 위해서는 지출의 구조조정과 함께 세원 확충 방안도 본격적으로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정부는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해 규제개혁과 노사관계 선진화 등 투자 여건 개선과 함께 신성장 동력 발굴, 경제시스템 선진화 등의 노력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앞서 제시된 과제들은 정부의 힘만으로 풀기 어려운 것이다. 공론화를 통해 국민적 합의가 도출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