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인천…화환에 파묻힌 맥아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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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아더 동상 수호 결의대회'가 15일 인천시 자유공원에서 열렸다. 행사에 참가한 해병대 전우회 회원들이 성조기와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고 있다.김상선 기자

1950년 9월 15일 낮 12시. 인천 팔미도 앞바다의 연합군 함정에서 상륙용 보트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와 그린비치(월미도).블루비치(송도) 등 4개 지점의 해안으로 돌진했다.

16일 새벽이 되자 시가전을 벌이며 저항하던 인민군들이 인천에서 패퇴했으며 13일 후에는 서울이 수복됐다. 노르망디 상륙전에 버금가는 규모였지만 연합군 전사자가 20명에 불과한 완벽한 상륙작전이었다.

인천상륙작전 55주년을 맞은 15일,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 주위는 꽃 더미로 덮였다. 이날 인천에서는 맥아더 장군 동상 사수 대회를 비롯한 크고 작은 행사들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

11일 동상 철거 시위가 벌어졌던 인천 자유공원에서는 이날 오후 2시부터 해병전우회를 중심으로 동상 사수 결의대회가 열렸다. 상륙작전 참전용사 등 2000여 명이 참가한 이날 대회는 헌화식, 참전용사 회고, 결의문 낭독 등으로 진행됐다.

이헌기 인천상륙작전기념회 회장은 참전 당시를 회고하며 "인천상륙작전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번영과 발전이 있었겠느냐"며 "시민들의 힘으로 반미친북 세력을 척결하자"고 말했다.

이어 가수 송만기씨가 자신이 작사.작곡한 노래 '맥아더를 사랑하자'를, 가수 정광태씨는 '독도는 우리 땅'을 불렀다.

이날 대회는 '맥아더 동상을 끝까지 지켜낸다' 등 3개 항의 결의문을 채택한 데 이어 오후 3시쯤 만세3창을 끝으로 평화적으로 끝났다.

인천기독교연합회(회장 서명섭.흰돌교회 목사)는 이날 오전 11시부터 인천시 남구 주안동 옛 시민회관 공원에서 1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인천상륙작전 기념기도회'를 열었다. 기도회 참석자들은 제물포역까지 1.5km 구간을 행진하며 맥아더 동상 철거를 반대하는 가두 캠페인을 벌였다.

이에 앞서 15일 오전 9시40분에는 안상수 인천시장과 김명균 해병대사령관, 두언 시센 주한 미 해병대사령관 등 12명이 해군함정을 타고 월미도 2㎞ 앞 해상에 도착해 상륙작전 전몰장병을 위한 해상 헌화를 했다. 이들은 해상 헌화에 이어 자유공원으로 가 맥아더 장군 동상에도 헌화했다.

오전 11시에는 송도의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서 55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기념식에는 안상수 인천시장과 한.미 해병대 사령관, 참전용사 등 800여 명이 참석했다.

인천상륙작전기념행사는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던 2000년부터 축소됐다. 1999년까지는 해병대 장갑차 부대의 시내 행진 등 시민축제 규모였으나 시민단체들이 '반통일적 구태'라며 반발해 이후 헌화행사와 기념식만 열고 있다.

해병대전우회의 한 관계자는 "우리도 마땅히 프랑스에서 매년 개최되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축제에 버금가는 기념행사를 축제 분위기 속에서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명균 해병대사령관은 이날 기념사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은 많은 불확실성 속에 둘러싸여 있지만 분명한 것은 자유란 결코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인천=정기환.정영진 기자<einbaum@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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