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공의 후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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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도오자시게노리」(동곽무덕) 가 한국계라니-.
아는 사람은 알았지만 그 사실을 확인하는 일본인들이 몹시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디 일본인뿐인가.
일제시대를 살았던 한국인은 더욱 그 사실을 의아해하며 반신반의할 것이다.
「도오고·시게노리」 는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할 당시 일본「도오죠」(동조영기) 내각의, 외상이었고 패전 때에도 외상이었던 인물.
그 때문에 그는 전범 재판에서20년 금고형을 받고 복역 중 50년 7월 사망했다.
그러나 그가 유명한 것은 호전적인 일본 군??세 앞에서 조금도 굽히지 않고 평화를 지키며고 노력한 사실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 대미 개전을 저지하려했고, 전쟁이 난 후에는 종전을 서둘렀고 전범재판 때는 떳떳하게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당당한 인품이 너무도 인상적이다.
그의 인품을 지금 일본의 한 주간지에 연재중인논픽션『두개의 조국』에서 더욱 드러나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그가 한국계 도공의 후예라는 사실이다. 그의 고향이 규우슈(구주) 의 가고시마(녹아도)라는 점은 모든 사실을 설명해준다.
구주남쪽 끝에 있는 가고시마는 임신왜난 때 일본에 끌려온 한인 도공들의 정착지다. 남원성에서「시마즈·요시히로」(도진의홍)에게 끌려온 한국인 도공은 80명 가량. 그들은 이 가고시마 주변에 정착하여 일본에 도예를 심었다.
끌려온 한국인들은 거의 귀화를 서둘렀지만 가고시마의 도공들은 명치시대까지 근 2백년간 이름과 풍속을 지키며「한국인」을 고집했다.
아직도 유명한 사쓰마야끼(살마소)의 심수관이란 사람은 한국 이름을 간직하고 있다.
그 심수관가의 시조는 심홍계지만 그 가계는 일본에서 14대째의 심수관으로 살고 있다.
엄밀하게 나누면 사쓰마야끼는 세 갈래다. 하나는 곶목야, 묘대천 계통이고, 다른 하나는 신지천에 살던 김해씨의「고첩주소」, 그리고 마지막으로「자기계제요」.
심수관의 계통은 바로 묘대천계. 원래 그 지도자는 박평의였다.
박평의의 가문이 성을「도오고」(동향) 로 바꾸었으며, 지금도 가고시마엔 도오고라는 고장이 있다.「도오고·시게노리」는 바로 도공 박평의의 후손이며 5살까지는 박무덕으로 불리던 소년이었다.
박평의는 성주의 명을 거스르며까지 성내로 이사하기를 반대하며 의롭고 고집스럽게 독자적인 조선 자기의 전통을 지켰던 사쓰마야끼의 주인공이다.
그 박평의의 후손「도오고」가 난세의 외상으로서 의롭고 고집스럽게 일본 군벌의 거센 위험 속에서도 의연했던 것은 그 핏줄을 생각하게 한다.
일본 속에 산 자랑스런 한국인을 보면서 그 긍지를 이어갈 마음가짐이 아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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