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알맹이 없는 선언문 합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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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유엔 창설 60주년 총회가 170여 개국 정상들이 참여한 가운데 1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개막됐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첫 기조연설을 했다.

이에 앞서 회원국들은 총회에서 채택될 정상회담 선언문 초안에 어렵사리 합의했다. 35쪽의 초안은 빈곤퇴치.환경보호 및 테러와 전쟁 방지 등을 위한 실행 계획을 담고 있다. 그러나 회원국 간 이해가 엇갈려 테러의 정의를 분명하게 내리지 못하고, 빈곤해소를 위한 실행 방안도 확보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알맹이 없는 선언문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모두가 더 많은 것을 원했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선언문은 모든 형태의 테러를 비난하고 있지만 무엇이 테러인지에 관해서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미국 등 서방 측은 "민간인을 살상하는 행위"로 규정하려 했으나 팔레스타인 등 중동국가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아랍국가들이 주장했던 민족해방투쟁을 지지하는 내용도 빠졌다. 양측이 타협한 셈이다.

빈곤해소를 위해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들이 국내총생산(GDP)의 0.7% 이상을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 등이 반대해 "많은 선진국이 GDP의 0.7% 이상을 개도국 원조에 쓰길 바란다"는 말로 대체됐다. 유엔 개혁문제는 이라크 석유-식량 프로그램에서 큰 비리가 드러난 것과 관련, 엄격한 감사를 실시한다는 정도로만 합의했다.

그나마 성과라면 유엔 평화구축위원회의 창설이다. 이 위원회는 회원국들이 전쟁을 겪은 국가의 재건을 도와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량학살 사태에 외국군이 개입할 국제법상 근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유엔본부=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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