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헌재의 구성, 강한 권한 고려할 때 다양해져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최근 통합진보당의 정당 해산 결정 과정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하게 된 것은 한국 정치에서 헌법재판소의 역할이었다. 1987년 헌법 개정에서 가장 두드러진 내용도 사실 헌법재판소의 부활이었다. 헌법재판소가 별도의 기구로 설치되었고, 제2 공화국 때 부여한 위헌 법률 심판, 탄핵 심판, 정당 해산 심판, 권한 쟁의 심판뿐만 아니라 헌법 소원 심판의 권한까지 새로이 부여되었다. 과거와 달리 헌법재판소가 적극적으로 헌법 재판에 나서면서 이제는 한국 정치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핵심적 행위자가 되었다. 중요한 정치제도의 변화 역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의해 이뤄졌다. 국회의원 선거 때 지역구 후보에 대한 투표뿐만 아니라 별도로 정당 투표를 하는 현행 1인 2표제 선거제도는 전국구 의석 배분 방식에 대한 2001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의 결과였다. 헌법재판소는 최근 선거구 간 인구 편차를 2 대 1 이내로 하라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국회는 조만간 선거구를 재획정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이번 정당 해산 결정과 함께 이제 헌법재판소는 헌법에서 부여한 모든 권한을 다 행사해 본 셈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의 정당 해산 결정까지 지켜보면서 헌법재판소가 지닌 권한의 막강함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신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특별법’처럼 여당과 야당이 합의해서 국회를 통과시킨 법률도 위헌으로 뒤집어 버릴 수 있었고, 조건만 갖춰진다면 대통령도 탄핵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보여준 것처럼 의회에 진출해 있는 정당을 해산시키고 현직 의원의 직을 빼앗을 수 있는 권한도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이런 막강한 권한을 고려할 때 그 내부 구성은 너무나도 동질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구성원들뿐만 아니라 역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모두 매우 유사한 경력을 밟아온 사법 엘리트들이기 때문에 과연 이와 같은 동질적 집단으로부터의 폐쇄적 충원이 우리 사회의 다원성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이번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8 대 1이라는 사실상 합의된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판결 직후 중앙일보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통합진보당 해산에 대한 찬성이 63.8%, 반대한다는 응답이 23.7%였다. 헌법재판소나 국민 모두 다수가 찬성 쪽으로 기울어져 있지만 헌법재판소의 견해가 더 하나로 모아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여론을 그대로 반영할 필요는 없는 것이지만 적어도 사회 일반보다는 동질적 집단이라는 평가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헌법재판소 구성의 다양성 부족을 지적하는 까닭은 헌법 재판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속성을 지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판소라는 명칭 때문에 사법적인 측면만이 강조되고 있지만, 사실 헌법은 정치 공동체의 가장 핵심적인 정치적 가치를 담고 있고 그 제정 과정 역시 정치적 논쟁의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헌법 재판은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해석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나라의 제헌헌법에서는 헌법위원회를 두어 위헌 법률 심판을 담당하도록 했는데, 그 구성은 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고, 대법관 5인과 국회의원 5인을 위원으로 하도록 했다. 지금보다 그 구성에서 정치적 측면이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당시 이런 방식을 채택한 것도 헌법 해석이 지닌 정치적 속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헌법은 제헌헌법과는 달리 별도의 기구로 헌법재판소를 설치했기 때문에 현역 정치인이 헌법 재판에 참여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또한 헌법재판소가 지금과 같은 권위와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게 된 것도 정파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국회와는 달리 헌법재판소는 비정파적이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중립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매우 유사한 학력과 경력, 사회경제적 조건을 갖춘 법조 엘리트들로 구성된 헌법재판소가 실제로 비정파적이고 무이념적이며 정치색 없는 공정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헌법재판소의 구성이 다양화되지 않는다면 헌법 재판은 헌법이 지닌 정신과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재판관 개인이나 혹은 그들이 속한 사회 집단의 정치적 입장을 관철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의 정당 해산이나 대통령 탄핵이 아니더라도 헌법재판소는 앞으로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계속해서 다룰 수밖에 없다. 그것이 헌법이 제도적으로 헌법재판소에 부여한 역할이다. 그와 같이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권위를 갖고 국민에게 신뢰할 만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그 스스로 내부 조직의 구성을 다양화하고 개방하려는 노력이 절실해 보인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