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후계자 직접 키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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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자민당의 후계 구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기세다. 고이즈미는 12일 기자회견에서 임기(내년 9월) 연장설을 부인한 뒤 "다음 총리는 나의 개혁을 더욱 전진시키려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보다 더 의미심장한 발언도 나왔다. "후임 총리직에 의욕을 가진 사람에게 활약할 일거리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10월 말 또는 11월 초께로 예정된 개각에서 '포스트 고이즈미' 후보자들에게 주요 직책을 맡길 것이란 예고였다. 이는 고이즈미가 직접 후계자 키우기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이번 개각에선 복수 후보를 등용할 가능성이 높다. 후보자들의 자질을 검증하는 한편 자신의 퇴임 뒤까지 내다보면서 충성 경쟁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뒤를 이을 주자로 가장 주목받는 사람은 아베 신조(安部晉三) 자민당 간사장 대리다. 차기 총리감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늘 1위를 차지한다. 각료 경험이 없다는 약점이 있으나 고이즈미가 이번 개각에서 메워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아베는 북한 제재나 과거사 문제 등에서 매우 강경한 입장이어서 균형감각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중적 인기는 낮지만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무상과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楨一) 재무상도 꾸준히 차기 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아소는 우정공사를 관할하는 총무상으로 처음엔 민영화에 반대했으나 나중엔 고이즈미와 호흡을 맞췄다. 그의 태도 변화는 후계 구도를 염두에 둔 것이란 관측도 있다. '예스맨'이라 불릴 정도로 고이즈미 개혁의 신봉자인 다니가키는 자민당 내에서 정책에 밝은 실무형으로 분류된다. 한때 차기 총리감으로 유력하게 떠올랐던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관방장관은 고이즈미의 압승으로 후계 구도에서 밀려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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