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 칼럼] 기업인 가석방, 결단은 대통령 몫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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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호 30면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각종 범법행위로 수감 중인 기업인들에 대한 사면 또는 가석방 문제의 본질은 무엇일까.

“경제위기 극복방안의 하나로 기업인들의 사면이나 가석방을 검토해야 한다”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으로 재점화된 이 문제는 단순히 ‘법대로’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고차방정식이다.

문제를 풀기 위해선 먼저 그 대상부터 특정해야 한다. ‘기업인들’이라고 포장은 됐지만 논란의 핵심은 최 회장이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나 조석래 효성 회장,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과 그의 모친 이선애 전 상무는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미결수 신분이어서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없다. 사면 대상으로도 적절치 않다.

최 회장에 대한 가석방은 법률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을까. 그는 징역 4년형을 확정받고 2년째 수감 중이다. ‘유기징역형의 경우 형기 3분의 1을 경과하면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근거에 따라 형식상 별문제는 없어 보인다. “기업인이라고 특혜를 받아서는 안 되지만 불이익을 받아서도 안 된다”는 논리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형기의 80%를 마친 수감자들이 가석방의 대상이 돼 온 관례를 고려할 때 특혜 논란이 불거질 소지는 다분하다. 여기다 가석방심사위원회에 소속된 민간위원들이 형평성 문제로 이의를 제기할 경우 오히려 법무부의 입장만 난처해질 수도 있다.

그뿐 아니다. “최 회장에 대한 가석방이 과연 정의로운가”라는 물음이 방정식의 난이도를 높이고 있다. “최 회장에 대한 가석방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것이라면 정치권이 왜 나서서 떠들까”라는 의심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법과 원칙에 따라 가석방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는데도 최경환 부총리는 왜 청와대에 건의를 할까. 법률적으로 약간의 무리수가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부정적 시선을 우려한 게 사실일 것이다.

그럼 최 회장의 가석방 심사는 물 건너간 것일까. 쉽지는 않지만 가석방에 필요한 ‘특별사유’를 법리적으로 구성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가석방 심사 대상에 필요한 ‘부당이득 환수’와 관련해 최 회장은 이미 자신의 횡령액수에 대한 변제를 마쳤다. 다른 재벌 총수들과는 달리 칭병(稱病)을 이유로 온정주의에 호소하지 않은 것도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를 특별사유로 볼 수 있을까. ‘경제적 급박성’이나 ‘현존하는 경제적 위험성’으로 상정할 수 있을까. 가석방 문제는 법리적으로 만만치 않다. “가석방 심사위원회 명단과 심사 내용을 모두 공개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이 또한 최 회장을 위한 ‘원 포인트’ 대안이란 점에서 시빗거리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누가 풀 수 있을까. 여권은 물론 야당도 최 회장 등의 석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만큼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 아닌가. “가석방 문제는 법무부 장관의 고유 권한”이라는 말로 책임을 피해서는 안 된다.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에게서 권한을 위임받아 업무를 처리하는 참모이자 국무위원이다. 광의의 법률적 해석으론 가석방도 일종의 사면권이다. 경제살리기를 위해 최 회장 등 기업인의 복귀가 절실히 필요하다면 법률적으로 난제가 많은 가석방보다는 사면 등의 방법으로 원칙을 정해 정면 돌파하는 게 맞다. ‘폭탄 돌리기’처럼 이리저리 말을 돌려가며 국민과 기업을 헷갈리게 하는 것은 법치주의 정신에도 맞지 않다. “형벌과 포상을 적절히 운용하는 것이 군주의 도리”라고 했던 한비자와 마키아벨리의 경구를 떠올려 본다.

박재현 중앙일보 논설위원 abn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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