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도 학생을 닮아가야 하는걸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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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나는 20여년간의 교직생활중에서 여학교 생활이 10여년 된다. 남학교에서 10년 있다가 자리를 옮긴 것이다.
교사의 이상은 청출어남이라던가. 선배교사들의 충고를 항시 되새기면서 「나」보다는 더 훌륭한 인물이 되어야한다. 「나」를 닮지말고 「나」보다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가 되어야한다고 강조했다.
학생은 자기자신이 존경하는 교사를 많이 닯으려고 한다. 말씨, 글씨채, 걸음걸이, 제스처 등 교사가 가지고 있는 특징, 또는 결점까지도 서슴치않고 닯아가고 있다. 이런 것들은 외향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내면적인데서도 많은 영향을 받고 닮아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학생만이 교사를 닮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교사가 학생을 닯아간다고 주장하고 싶다. 교사들도 학생을 닯기 때문에 학교생활에 보람과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10여년전 어느날 종례시간에 통지표를 나누어 주면서 좀더 열심히 공부해 줄 것을 당부하는 담임에게 여학생들은 매우 못마땅하다는 표정들을 지었다.
나는 왜 그런지 눈치를 채지 못한채 그냥 넘겨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수 없는 일이기에 한 학생을 불러서 물어보았더니 선생님께서 통지표를 펴서 주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아차 이 작은 인격자들에게 내가 무관심했구나. 학생들은 통지표를 받아가지고 교실 한쪽 귀퉁이에 가서 아무도 없는데서도 누가 볼까봐 양손으로 가리면서 이마에 대고 보는 아이들인데….
내가 미처 이것을 몰랐구나! 이런 실수를 했으니 아이들의 불만은 너무나 당연하지. 그후론 나는 학생들에게 통지표를 펴서 주는 일을 삼가고 있다.
여기서 나는 학생들의 뜻이 무엇인가. 생각하면서 그들의 뜻을 따르며 그들을 닯을수 밖에 없는 나를 뒤늦게나마 발견했다.
교사도 학생을 열심히 닮아가는 교사가 우수한 교사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최정환 <중대부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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