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독주시대 개막] 여섯살 위 누나가 정치적 스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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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개혁에 대한 고집스런 승부수가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 자민당의 기록적인 압승을 이끌어 냈다. 사진은 총선을 하루 앞둔 10일 도쿄에서 개혁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장면. [도쿄 로이터=연합뉴스]

▶ 고이즈미 총리의 셋째 누나인 노부코. 일 언론에 보관돼 있는 그녀의 유일한 사진이다. 부친인 준야가 1965년 방위청 장관으로 임명됐을 때 일 최초의 여성 장관비서관으로 임명되면서 찍은 사진이다. 이후 40년간 그녀는 한 번도 언론에 노출된 적이 없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좀처럼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측근도 거의 없다. 결정은 직감에 따른다. 그래서 '헨진(變人.괴짜)' '독불장군' 등으로 불린다.

그러나 이는 피상적 관찰이다. '인간 고이즈미'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 '고독'이다. 가족사와 관련된 배신의 아픈 경험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의지하는 사람은 단 둘뿐이다. 누나인 노부코(信子.69)와 비서관 이지마 이사오(飯島勳.60)다.

◆ 고독, 그리고 마이웨이=고이즈미의 아버지 준야(純也)는 요코스카 출신 정치인으로 체신상을 지낸 고이즈미 마타지로(小泉又次郞)의 데릴사위로 들어갔다. 일본 전통에 따라 성도 고이즈미로 바꿨다. 방위청 장관까지 올랐던 준야가 급사한 것은 1969년 8월. 영국 유학 중인 고이즈미는 급거 귀국했다. 그는 부친의 책상 서랍에서 '필승 준이치로'란 제목의 유서를 발견하고 진로를 정치로 굳힌다. 이 편지는 지금도 고이즈미의 의원회관 사무실에 걸려 있다.

고이즈미는 그해 12월 치러진 선거에서 낙선해 큰 충격을 받는다. 낙선의 설움보다 준야를 지지했던 후원 세력이 "준야는 원래 고이즈미가의 본류가 아니었다"며 배신한 데 대한 아픔이 더 컸다.

남은 것은 가족뿐이었다. "고이즈미는 당시 겪은 배신을 절대 잊지 않는다"는 게 지인들의 이야기다. 78년 에스에스제약 창업자의 딸과 결혼했다 4년 만에 맞은 파경도 큰 충격이었다. 이혼 당시 부인은 아들 둘, 임신 6개월 상황이었다. 고이즈미는 이후 지금까지 독신이다. 말수는 줄고 고독을 즐기게 됐다. 그는 주말에도 거의 총리 공관을 나서지 않는다. 공관에 처박혀 혼자 시간을 보낸다. 클래식이나 오페라 CD를 듣는 게 낙이다. 운동이라곤 가끔 정원에서 혼자 벽에다 야구공을 던지며 캐치볼을 하는 게 유일하다.

◆ 베일 속의 여왕 노부코=고독한 고이즈미가 마음을 의지하는 유일한 안식처가 여섯 살 위인 셋째 누나 노부코다. 노부코의 공식 직책은 국회의원 고이즈미 사무실의 정책 비서. 그러나 고이즈미에겐 정치를 가르쳐 준 스승이요, 일을 꼼꼼히 챙겨주는 어머니요, 고이즈미가 모든 걸 털어놓는 '퍼스트 레이디' 같은 존재다. 2001년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의 기세에 눌린 고이즈미는 출마 포기를 검토했다. 이때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게 노부코다. 그녀는 동생 고이즈미를 불러놓고 타이른다. "이번 선거는 고이즈미가(家)가 이기지 않으면 안 되는 '전쟁'이다."

결국 고이즈미는 전세를 역전시켜 총리로 등극한다. 노부코는 58년 고교 졸업 후 아버지 준야의 비서로 채용됐다. 이후 65년 준야가 방위청 장관에 취임하면서 일본 최초의 여성 장관비서관이 됐다. 준야가 사망한 뒤엔 정치 문외한이던 고이즈미에게 '정치의 ABC'를 가르쳤다. 또 금고지기 역할까지 도맡아 했다. 총리 취임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경비를 관리했다. 노부코와 친분이 있는 정치평론가 사토 유이치(佐藤雄一)는 "결혼도 안 하고 정치인 가문 고이즈미가를 지켜 온 노부코에겐 고이즈미를 '위대한 총리'로 만드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였다"며 "이 때문에 남의 말을 안 듣는 고이즈미 총리도 노부코의 말에는 꼼짝을 못한다"고 전했다.

◆ 고이즈미의 33년 분신인 이지마=그는 33년간 줄곧 고이즈미의 그림자 역할을 해 온 '만년 비서'다. 168cm에 100kg이 넘는 거구로 "난 고이즈미에게 몸을 던졌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실제 그의 인생은 고이즈미의 정치인생과 말 그대로 '일심동체'다. 4형제 중 자신을 제외한 형제 모두 정신 장애를 앓는 등 불우한 성장기를 보낸 그는 한 특허 사무실에서 일하며 야간대학을 마쳤다. 직장 동료의 소개로 고이즈미가 비서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고이즈미는 하숙집 주인의 이름, 준이치로는 어릴 적 죽은 형의 이름과 같다"는 이유로 고이즈미를 찾아갔다고 한다. 고이즈미가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되던 72년 일이다.

이들은 출신 성분부터 취미.체형까지 어느 하나 일치하는 게 없다. 고이즈미가 검소를 강조하는 반면 비서관 이지마는 캐딜락 승용차에 최고급 외국 브랜드를 몸에 휘감고 다닌다. 하지만 이들의 언동을 지켜보면 '일란성 쌍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흡사하다. 독수리가 먹이를 채 가듯 다른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화법이 그렇다. 논리보다는 감정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것도 똑같다.

또 이들은 철저하게 '선과 악'의 양분법을 구사한다. 그는 작가 사노 신이치(佐野信一)와의 인터뷰에서 "고이즈미가 총리에서 물러나는 순간 난 나가타초(한국의 여의도에 해당)에서 100% 사라질 것"이라고 호언했다. 비서는 비서일 뿐 정치를 꿈꿔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그래서 의견 충돌도 없다. 33년 동안 고이즈미에게 '혼난' 적이 꼭 한 번 있다. 차 뒷문을 잘못 닫아 고이즈미의 발이 끼였을 때라고 한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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