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타임] 부부싸움 뒤끝이 몇달씩 갈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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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누가 그랬나, 싸워야 정든다고. 젊어서 신혼시절이야 아직 뜨거운 그 무엇이 남아 싸웠다가도 쉽게 풀리곤 했겠지만 나이 들면 아니다. 싸운 뒤끝이 오래가면 부부 간의 정도 달아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싸움 한번 하지 않고 사는 부부가 몇이나 되랴? 문제는 싸우고 나서 자연스럽게 예전 관계를 복원하기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데 있지 않을까.

내 친구 남편으로 경기도 일산에 사는 박모씨는 아내와 싸운 뒤 화해하지 못하고 시간만 끌다가 아주 최악의 상황으로 갈 뻔한 경험이 있다. 원래 말수가 적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의 성격을 고쳐볼까 고민하다가 행동으로 보여주는 마술을 떠올리고 인터넷 사이트의 마술 동호회를 찾아 간단한 마술을 배웠다고 한다.

시간을 내서, 돈을 들여서 배우는 마술이 아닌 관객 한 명, 아이들까지 합해 많아야 세 명의 관객을 앞에 두고 가족들을 감동시킬 만한 마술쯤은 조금만 노력하면 습득할 수 있었다는 것. 신문에 하트가 생겨나게 하는 마술, 물컵에 물이 사라지게 하는 마술, 휴지마술, 돈 생기는 마술, 종이로 꽃가루 날려 가족들을 감동시키는 마술 등을 틈틈이 익혔다. 나중에 그 남편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장미꽃을 소매에서 빼서 전해주는 마술을 보여주니까 좀 반응이 오더라고요. 이어서 몸의 여기저기서 1만원짜리가 마구 나오는 돈 마술을 보여주니까 제일 좋아해. 그런데 마술을 공짜로 배웠다고 말하니 진짜 좋아하더라고."

박씨는 그 뒤 부부싸움이라도 하면 오리처럼 입이 비쭉 나와 있는 아내에게 무언의 사랑의 코드, 화해의 코드를 날려보내는 데 마술을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 후배 중 서울 신도림동에 사는 구 모씨는 평소 부부싸움 후 서로 눈치만 보고 화해를 못해 질질 마음고생을 하는 것을 고쳐보려고 자기만의 화해의 코드를 준비했다. 그것은 평소 절대 안 하던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결해 주는 것. 평소 부인의 부탁을 받고도 못 들어준 집안일, 아내가 유독 싫어하는 부분의 집안일을 말끔히 해결해 주면 어느새 슬그머니 아내가 커피 한 잔을 타놓고 간다는 것이다.

그렇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는 것이다. 특히 부부 간의 문제는 그 부부만이 풀 수 있다. 남편과 커피 한 잔 하면서 싸웠을 때 어떻게 할지 부부만의 매뉴얼이라도 만들어보면 어떨까.

김숙진(주부통신원) L2u2x4@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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