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깊이읽기] 테러도 반테러도 "신의 이름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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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거룩한 테러
브루스 링컨 지음, 김윤성 옮김, 돌베개, 299쪽,1만5000원

유일 초강국 미국을 강타하고 세상의 지축을 뒤흔든 9.11 테러가 4주년을 맞는다. 약 3000명이 숨진 이 참사에서 세계는 그동안 무슨 교훈을 얻었을까. "교훈은 무슨 얼어 죽을 교훈?" 지금도 전쟁터에서 쉼없이 스러지는 병사들은 이렇게 외치지 않을까. 나의 종교, 나의 신념에만 빠져 있는 한 치유는 없다. 9.11을 되돌아본 신간을 살펴본다.

'전쟁론'에서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1780~1831)가 갈파한 것처럼 "전쟁은 다른 수단들에 의해 지속되는 정치며, 폭력은 물리적 힘으로 지속되는 갈등"이다. 여기에 종교라는 대의까지 가세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나의 믿음만 지고의 선이 되고, 화해의 가능성은 급격히 줄어든다. 9.11 테러도 마찬가지다. 서구의 시각으로 볼 때 피해자와 가해자가 너무도 분명한 사건이다. 당한 쪽이 선이고 상대방은 악이다. 상대방은 폭력과 전쟁으로 응징해야 한다. 세계는 시나브로 미국의 대(對)테러 전쟁에 동참하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로 양분됐다.

당분간 깨지지 않을 듯한 이 도그마에 미국의 저명 종교학자 브루스 링컨이 의문을 던진다. 과연 그런가. 이슬람 전사의 가슴 속엔 악마의 기운만 가득 차 있을까. 선악은 분명히 구분되는 것인가.

저자의 답은 '아니올시다'다. 9.11이 분명 종교와 깊은 연관성이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종교는 단지 이슬람교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는 미국의 복음주의 개신교도 같은 선상에서 고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 사회에서 흔치 않은 시각이다.

그는 네 가지 텍스트를 천착했다. 9.11 주동자인 모하메드 아타가 마지막까지 탐독했던 지령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시작된 날 방송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빈 라덴의 연설, 그리고 팻 로버트슨 목사(최근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암살해야 한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킨 장본인) 등 미 복음주의 개신교 지도자가 밝힌 9.11에 대한 해석 등이다.

분석 결과는 흥미롭다. 부시는 연설에서 자신이 미국이라는 세속국가의 수장으로서 종교와 정치를 혼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무던히 애쓴다. 아타의 지령서와 빈 라덴의 연설 또한 미국을 사탄의 우두머리로 규정짓기 위해 이슬람 경전 속의 오래된 역사를 수시로 인용한다. 저자는 미국의 개신교 지도자가 지향하는 사회도 이슬람 못잖게 종교에 뿌리를 둔 국가라고 꼬집는다. 다 종교적 근본주의라는 얘기다.

결론은 간단하다. 인간이 정치에 종교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빈 라덴이나 부시나, 알 카에다나 미국이나, 이슬람교나 복음주의 개신교나 너나 할 것 없이 말이다. 종교에 정치가 개입하는 순간 종교는 순수성을 잃는다. 중세 십자군과 최근 이슬람 테러에서 볼 수 있듯이 종교적 신념을 폭력으로 강요하는 순간 종교는 이미 인간에 의해 더럽혀진 물건이 된다. 종교의 으뜸이 사랑이라는 걸 외면한 탓이다.

'원수를 사랑하라. 네가 먼저 손을 내밀라'는 성경과 코란의 한결 같은 진리는 어디로 갔을까. 이번 일요일 아침에도 부시 대통령과 로버트슨 목사는 가장 먼저 성경책을 펴들 것이다. 그들에게 '사랑은 온유하며 성내지 아니하노니…'라는 고린도전서는 어떻게 읽힐까.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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