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베니스 영화제 폐막 작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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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현지시간으로 10일 막을 내리는 제62회 베니스 영화제의 폐막 작품은 '퍼햅스 러브'다. '첨밀밀'의 천커신(陳可辛) 감독이 만든, 동아시아권에서 보기 드문 대형 뮤지컬 영화다. 진청우(金城武).장쉐유(張學友).저우쉰(周迅) 등의 홍콩 스타와 드라마 '대장금'으로 한류 스타가 된 지진희가 주연급으로 참여했다.

'물랑루즈'나 '시카고' 같은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에만 익숙한 터에 홍콩산 뮤지컬 영화라니. 게다가 싱글 앨범 한 장 낸 적 없는 지진희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장면까지 상상하면 도통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영화의 밑그림 격인 OST와 뮤직비디오, 메이킹 필름을 공개하는 대규모 기자회견이 6일 오후 중국 베이징 하얏트 호텔에서 열렸다.♧

"영화는 영화관(은막)에서 봐야 제 맛이지요. 특히 대형 화면으로 보기에 적합한 장르가 뮤지컬 영화입니다."

왜 뮤지컬 영화를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대답한 천 감독은 "한국 영화가 나날이 발전하는 반면 중국 영화는 막바지에 이르렀다"며 "아시아에서 보기 드문 새로운 형식의 블록버스터급 영화로 재도약의 발판을 삼고 싶다"고 덧붙였다.

120여억 원에 달하는 제작비가 투입된 만큼 영화의 스케일은 할리우드의 그것 못지않아 보인다. 짙은 화장을 한 여성들의 얼굴이 은막을 가득 메우며 '아이 메이요(사랑도 없고)…'라고 노래하기 시작하는 메인 테마곡 '십자가로'는 '헤이 시스터'로 시작되는 물랑루즈의 주제곡 'Lady Marmalade'를 떠올린다.

그러나 중국어 노래 가사와 볼리우드(봄베이와 할리우드의 합성어로 인도 영화계를 가리키는 말)식 군무는 동양적인 색채를 짙게 풍긴다. 2004 토니상 최우수 안무가 후보에 올랐던 볼리우드의 유명 안무가 파라칸의 색깔이 녹아든 대목이다. 천 감독은 "어느 순간 창조적으로 확 튀어오르는 듯한 인도 영화의 정신을 가져오고 싶어 직접 인도에 가서 안무가를 골랐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에서 지진희는 세 남녀가 사랑에 대한 기억을 되찾도록 도와주는 천사 '몬티'역을 맡았다. "편안하고 온순한 이미지가 천사 역할에 적합했다"는 게 천 감독의 얘기다.

지진희는 "천커신 감독의 영화라면 무조건 출연하겠다고 수락했다가 중국말로 춤을 추고 노래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어설픈 춤과 노래로 영화를 망칠 수 없어 거절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감독은 "천사 역할이니까 지나가는 모습만 보여주고 나중에 더빙으로 내레이션만 넣어도 된다"며 그를 불러 들였다.

결국 지진희는 중국 땅을 밟은 지 1주일 만에 중국어로 노래하고 춤을 춰야 했다. 그것도 노래 왕을 뜻하는 '가신(歌神)'이라 불리는 장쉐유와 1992년 가수로 데뷔한 진청우, 2003년 중국 팝 차트 최우수 신인상을 받은 여주인공 저우쉰 앞에서. 지씨는 "그다지 가창력이 필요한 노래가 아니었다. 또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와 춤추기 시작하는 인도 영화식 군무라 춤꾼처럼 잘 추지 않아도 분위기에 맞출 수 있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본토 사람에게는 어색하게 들릴 중국어 발음이 걸려 베니스에 다녀온 뒤 다시 한 번 녹음을 할 계획이다. 그래도 안되면 중국인 성우의 목소리를 더빙할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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