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 부활" 주장한 재야 원탁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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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 원탁회의 안과 밖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가 22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에 따른 3차 비상 원탁회의`에 참석해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하고 진보정치의 결실을 지키지 못해 정말 죄송하다”며 절을 하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 시간 원탁회의에 반대하며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앞에서 집회를 연 보수단체 회원(왼쪽)이 진보단체 회원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오종택 기자], [뉴시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진보진영의 새판 짜기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흐름은 크게 두 갈래다. 구 통진당을 재건하자는 움직임과 기존 정치를 아예 ‘앙시앙 레짐’(구체제)으로 규정하고 새로운 진용을 갖추자는 움직임이다.

 구 통진당 지도부는 재창당을 언급하고 있다. 이상규 전 의원은 22일 “각계각층의 민주 양심 인사와 재창당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사·대체 정당 창당은 불법이지만 강령을 바꾸면 창당도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내년 4월 보궐선거에 의원직을 상실한 전 의원 3명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선전할 경우 재창당은 현실화될 수도 있다. 야권의 원로기구인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반대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원탁회의’(원탁회의)도 이런 흐름에 힘을 보탰다. 이날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원탁회의 비상회의에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함세웅 신부, 김성근 목사 등 70여 명이 참석했다. 구 통진당에선 이정희 전 대표와 오병윤 전 원내대표 등이 참석했다. 이 전 대표는 엎드려 읍소했다. 그는 “진보정치의 결실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는 사죄의 절”이라며 울먹였다. 그의 호소에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은 “민주주의의 훼손을 좌시할 수 없다”며 “독재 회귀에 저항할 ‘민주쟁취국민운동’ 조직을 시급히 결성하자”고 했다. 분위기는 이내 고조됐다. 참석자들은 “종북놀이 마녀사냥에 앞장섰다”며 일부 취재기자와 보수단체 관계자들을 쫓아내기도 했다. 회의에선 “국정원에 의한 총체적 부정선거의 책임자를 처벌하자” “세월호로 흐지부지된 ‘대통령 퇴진운동’을 전개하자”는 등 대선 불복과 대통령 퇴진 주장도 나왔다고 한다. 함 신부는 마무리 발언으로 “통진당이 죽었으니 부활하게 하자”며 “독재 유신의 잔당을 타파하는 데 뜻을 같이하는 모든 단체의 연합전선을 만들자”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과 달리 통진당을 배제한 채 새로운 당을 만들자는 논의도 있다. 종교·문화예술·노동계 인사 100여 명이 참여한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건설을 촉구하는 모임’(국민모임)의 양기환 공동운영위원장은 이날 “기득권 정당은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다는 점이 세월호로 확인됐다”며 “백지 상태에서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안 정당은 통진당과는 무관하다. 정치인을 배제한 것도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새 정당을 만들자는 의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모임엔 통진당 부활을 주장하는 ‘원탁회의’의 핵심인 함 신부 등도 참여하고 있어 ‘교통정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진보진영 인사와 중도 인사가 섞여 있지만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로 방향을 잡은 쪽도 있다. 주섭일 ‘사회민주주의 포럼’ 공동대표는 “통진당은 동유럽의 공산당과 같은 낡은 극단주의 정당으로 ‘김씨 왕조’를 비판하지 않고 인권에 무관심했다”며 “우리는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형태 등 복지를 통해 모순을 완화하는 진보정치를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기표 사회민주당 창당 준비모임 정책팀장도 “북한에 반대하는 입장을 뚜렷하게 하는 진보정당이 목표”라고 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한국 정치에서 진보진영의 최대 지지율은 15% 남짓이지만 종북에 대한 거부감으로 구 통진당과 정의당의 지지율 합계가 5%로 줄어들었다”며 “종북 등 이념이 아닌 정책을 내세운 진보정당이 나타날 경우 파괴력을 보일 여지가 있다”고 전망했다.

글=정종문·조혜경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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