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조국」이렇게 본다|민주적 기본질서 확립 선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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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문가들이 말하는 접근방법
전두환 대통령이 18일 국정연설에서 밝힌「선진조국의 창조」라는 명제에 안팎의 관심이 쓸리고 있다. 전대통령은『임기 중 신명을 바쳐 이를 기필코 실현하고야 말겠다』고 밝혔다.「선진」이라는 말 그 자체가 상대적인 개념이고 보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선진조국도 국민적 합의에 의해 형성될 발전적인 개념으로 파악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회원국(24개국)올 보통 선진국으로 부르고들 있지만 이들 나라 중엔 우리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뒤지는 나라도 있는 등 보편 타당한 기준으로는 수용되지 않고 있다. 경제기획원의 한 관계자는 경제지수 면에서 본 선진국의 한 모델로▲GNP 1천억 달러, 1인당 3천 달러(현 6백50억 달러, 1천6백 달러)▲인구증가율0%(1·57%)▲외채감소추세▲피 원조국에서 원조국으로 전환↓OECD가입 등을 들었다. 우리가 지향할 선진국상과 이의 접근 방법을 각계 전문가들에게 물어본다.
▲이기탁 교수(연대·정박)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처럼 국민총생산액(GNP)이 높다고 해서 선진국으로 볼 수 없는 것처럼 선진국의 개념은상대적으로 파악돼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는 오랫동안 식민지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의 선진조국 상은 먼저 민족의 자주·독립의식의 함양에 두어야지 선진의 기준을 외형에 두어서는 안될 것이다.
동시에 물질적인 고도산업사회의 실현은 물론 그에 걸 맞는 시민의식과 민주주의의식의 심화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이러한 선진조국을 이룩하기 위한 출발점은 국내정치의 안정에 있다고 본다.
선진조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과거와 같은 흑백논리가 판쳐온 우리 정치구조에서 벗어나 민족세력을 어떻게 육성하는가에 달려있다고 본다.
▲길승흠 교수(서울대·정박)=「선진」은 국력의 신장 속에서 가능한 것이며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진 형태를 말한다.
이미 김대중씨의 석방이 이뤄졌고 정치규제자 해금 등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등 민주방향으로 나가고있다.
대외적으로는 미일관계가 호전되고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남북대화 및 남북교차 승인을 위한 시도가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국력의 신장을 가져올 것이다.
대화로써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이런 연장선상에서 국력신장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한일 경제협력 타결 등에 따른 경제적 호전 및 88올림픽 등도 여러 면에서 국력을 기를 기회라고 볼 수 있다.
▲김택현씨(대한변협회장)=전대통령이 밝힌「선진국」의 상이란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은 얼굴을 갖자는 의지의 표현으로 생각한다.
정치·경제적으로 장래를 예측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선진국상이며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성하더라도 국민들이 내일을 불안하게 생각하면 선진국이 아니다.
따라서 선진국이 되는데는 민주적인 기본질서의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 받지 않는 복지국가가 돼야하며 인권존중은 각 분야에서 고루 이루어져야한다.
또 민주적 기본질서는 3권 분립이 지켜지지 않으면 헛소리에 불과하다. 입법·사법부가 행정부만큼 균형 있게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크게 참고됐으면 한다.
경제적 선진화는 분배의 공평성을 통해 추진돼야 하며 살찐 기업인 밑에 추운 근로자가 얼마나 있는지는 정부가 잘 알 것이다.
복잡하게 말할 것 없이 민주주의의 토착화·사회정의 확립이라는 제5공화국의 이념이 제대로 구현되기만 하면 된다.
▲노인환씨(전경련부회장)=고도 기술산업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개발로 우리 산업의 전반적인 국제경쟁력을 높여야 할 것이다.
또 경제운용의 효율화를 위해서 시장경제체제를 보다 원활히 하여 창의와 경쟁에 바탕을 둔 기업경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변화무쌍한 주변정세에 능동적인 대응능력을 길러야하며 태평양시대의 전개에 따른 적극적인 경제외교 전개로 역내 국가들과 공동의 발전을 이루어나가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해나가야 할 것이다.
또 경제전쟁이라고까지 불리고 있는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이겨나가기 의해서는 정부·기업·가계 등 각 경제주체의 의식의 선진화 내지는 합리화가 이루어져야하며 아울러 모든 경제운용이 경제주체들의 일체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김인준씨(대한상의전무)=선진조국이라 함은 경제적으로는 복지국가를 의미하며 그 복지는 현대의 서구식 복지가 아니라 한국특유의 전통과 가치가 지배하는 복지가 돼야 한다.
자칫 복지는 물질적 개념으로만 파악하기 쉬우나 이는 큰 잘못이다. 물질과 정신이 잘 조화되는 가운데에서만 진정한 복지가 가능함을 알고 한국인의 얼이 담긴 복지를 추구해야 한다.
따라서 선진조국으로 가려는 국민 모두의 합의와 그 과정에서의 고난을 함께 이겨 넘기겠다는 각오가 있어야하며 그 방법은 한국적 자본주의 발전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정치·사회·경제·국민의식 등 각 부문에 걸친 생산성향상이 시급한 과제다. 생산성 수준이 선진국 수준과 걸맞게 될 때 우리도 선진조국을 떳떳이 외칠 수 있지, 그렇지 않고서는 선진조국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병인환씨(소설가·문인협회 소설분과위원장)=선진조국은 전통적인 상식을 바탕으로 하는 질서의 사회이어야 하고 문화의 꽃이 핀 예술의 사회이어야 하며 각자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여 세계를 누비는 산업국이어야 하며 많은 부가 축적된 경제강국이어야 한다.
이렇게 쌓여진 부는 균형에 의해 중산층이 두터워져 반석 화 될 때 선민의식에 의한 독선이 불식되고 숫자에 의한 현혹, 피부 화되지 못하는 구두탄, 속고 산다고 억울해하는 사람도 없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진국으로 가는 도정이다.「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이 없어지고 벽들을 쌓듯 성실하게 살아갈 때 자아의 성취와 우리의 번영을 가져올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
선진조국은 하늘에 떠있는 애드벌룬이 아니고 손에 잡히는 실상이어야 한다. 그러면서 더 앞서가는 선진으로의 비약을 꿈꾸는 생동하는 국민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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