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용 TV 자막처리 해주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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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농아인권리찾기 대회 참가자들이 방송사들의 자막방송 비율이 낮은 데 대한 항의로 TV를 부수는 TV 장례식을 벌였다. 김성룡 기자

청각 장애자인 김모(18)양은 가족들이 '웃음을 찾는 사람들' 같은 개그 프로그램을 볼 때면 슬그머니 자신의 방에 들어간다. 출연자들의 입 모양과 몸짓만으로 내용을 파악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다. 가족들에게 개그맨들의 말을 일일이 수화로 물어보는 것도 한계가 있다. 김양은 기자에게 보낸 e-메일에서 "자막 제공이 안 되는 TV는 청각 장애인에게는'바보상자'일 뿐"이라고 밝혔다.

국내 청각장애인들이 영상 문화의 불모지에 살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청각 장애인은 18만여 명이지만 한국농아인협회는 비등록 장애인까지 포함하면 35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 '미디어 접근권' 보장 요구=한국농아인협회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1000여 명의 장애인들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방송법.영화진흥법 개정 등을 요구하며 알몸 시위를 벌였다. TV장례식도 했다. TV와 영화에 자막 제공을 의무화하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해달라는 것이다. "공영방송인 KBS마저 청각장애인의 미디어 접근권을 무시하고 있다"며 KBS 본관까지 가두 행진도 했다. 장애인단체 관계자는 "현행 공중파 방송 4사의 '폐쇄자막' 방송 비율이 너무 낮다"고 주장했다.

폐쇄자막(closed caption)은 TV전파에 화면의 대화 내용을 담아 전송, 시청자가 원하면 별도로 설치된 수신기를 통해 화면 밑에 자막을 표시하는 기술이다. 일반 자막과 달리 시청자가 원할 때만 나타나 비장애인의 관람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한국 방송 4사의 자막방송 비율은 전체 편성시간 중 28%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나마 시행되는 자막 방송이 뉴스나 몇몇 인기 드라마에 집중돼 있고 시사토론이나 주말 오락프로그램, 스포츠 중계에는 거의 없다. 특히 교육방송(EBS)은 5월까지 12%대에 머물고 있다. 외국에선 청각 장애자를 위해 일정 비율 이상 폐쇄자막 방송을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은 2006년까지 비인기 시간(오후 2~6시)을 제외하고 방영되는 모든 프로그램에 폐쇄자막을 보내기로 했다. 유럽 국가들도 관련법으로 방송사의 자막 편성 비율을 의무화해 영국은 80%의 프로그램에서 폐쇄자막을 제공해야 한다. 폐쇄자막용 수신기 보급에서도 한국은 뒤떨어진 상황이다. 미국 등은 1993년부터 판매하는 TV에 자막수신기를 내장하도록 의무화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내장된 경우가 드물어 수신기 보급률이 20% 정도다.

◆ 영화에서도 소외=청각장애인은 영화관에서도 소외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의 354개 영화관에 있는 1545개의 개별상영관에서 각종 영화가 선을 보였다. 그러나 이 중 자막이 삽입된 한국 영화가 상영되는 곳은 서울 용산 CGV와 삼성동 메가박스 등 두 곳뿐이다.

천인성 기자 <guchi@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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