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지향적인 한일 정상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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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만약「나까소네」(중조근강홍)일본수상의 방한이 한일간에 최대현안으로 걸려있는 경제협력문제의 타결만을 위한 것이라면 「역사적인 방문」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사실 수상인「나까소네」가 정치적인 결단만 내린다면 경제협력문제는 그의 방한 없이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나까소네」수상의 전격적인 한국방문을 마음으로부터「잘된 일」이라고 환영하고 「역사적인 방문」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그가 일본 수상으로서는 한일관계 사상 처음으로 회담만을 위해 한국에 온다는 사실과, 서울의 한일 정상회담이 제2의 국교정상화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은 그리 넓지 않은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둔 일의대수의 관계에 있는 이웃이면서도 언제나「먼 이웃」의 거리를 유지해왔다.
일본의 한국통치가 끝난 지 36년, 두 나라의 국교가 정상화한지 18년이 지나도록 한국과 일본이 구원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협력보다는 대립과 갈등의 관계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두 당사국의 이익에 어긋날 뿐 아니라 북으로부터 가해지는 공동의 위협에 대처하는데도 큰 차질을 빚는 원인이 되어왔다.
물론「나까소네」수상이 한국을 방문하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17일 미일 정상회담에 가져갈「선물보따리」로서 한일 우호관계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사정이 눈에 뛴다.
81년 7월「레이건」-「스즈끼」회담에서 일본은 방위 비를 늘리라는 미국의 압력을 막아내는 방법의 하나로 가까운 우방들에 대한 경제협력을 약속한바 있다.
「나까소네」수상이 방미에 앞서 대한 4O0 달러 경제협력 문제를 해결하면 일본은 81년 7월의 약속을 부분적으로 지킨 셈이 되고, 따라서 워싱턴에서 예상되는 새로운 압력의 설봉을 피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섰을법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방한결정의 배경과 동기를 좀스럽게 따져 한일 정상회담의 중요성을 에누리하고 싶지는 않다.
동기야 어떻든 간에「나까소네」수상의 방한은 경제협력 타결의 차원을 훨씬 넘어서서 진정한 한일우호협력 시대를 여는 출발점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일간에는 과거에 집착하는, 뒤돌아보는 회담과 협상은 수없이 많이 열렸어도 미래지향적인 회담은 열린 일이 없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 나라 지도자들이나 대표들이 만난 자리에서 논의된 것은 언제나 두 나라간의 쌍무적인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고,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전과 번영에 공동으로 기여하는 거시적인 입장은 한번도 한일간 회담의 진지한 논의대상이 되지 못했다.
「나까소네」수상의 방한이 지리적으로는 한일 두 나라의 범위를 벗어나고 시간적으로는 미래지향적인 성격의 것이라는 또 하나의 판단근거는 한일, 미일 정상회담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공동의 위협에 함께 대처해야하는 한-미-일 세나라 수뇌들간의 일종의 연쇄회담이 되기 때문이다. 2월에「슐츠」미 국무장관이 서울에 오는 것까지 함께 생각하면 과거에 한국·미국·일본이 이렇게 집중적인 연쇄회담을 가졌던 일은 없었다.
「나까소네」수상 자신도 지난 4일의 기자회견에서 일본은 세계 속의 일본, 세계에서 신뢰받는 일본이 되어야한다고 강조했다. 경제협력 문제는 이미 결론이 난 거나 다름없다. 무역불균형, 재일 동포들의 지위문제, 문화교류 문제, 동북아시아정세에 대한 평가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세계 속의 일본, 신뢰받는 일본을 만들겠다는「나까소네」수상의 포부가 구체적으로 반영될 것을 우리는 기대한다.
일본은「경제동물」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세계의 도처에서 압력을 받고 반감을 사고 있다. 역사왜곡 사건은 일본의 입장을 더욱 궁지로 몰았다.「공짜안보」도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한일정상회담은 아시아와 구미 여러 나라들의 관심까지 끌고 있다. 국제정세, 특히 한반도 주변정세의 맥락 속에서「나까소네」수상의 방한이 거시적 미래지향적인 성과를 거두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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