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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교보문고 선정 '2014 올해의 좋은 책 1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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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014년의 끝머리다. 세월호 비극으로 모두가 아파했던 한 해다. 바탕이 튼튼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민낯이 드러났다. 우리의 오늘을 비추는 출판계도 출렁였다. ‘단속사회’ ‘감시사회’ ‘잉여사회’ ‘중독사회’ 등 다양한 키워드가 등장했다. ‘나’를 넘어서 ‘우리’가 함께하는 세상에 대한 고민이 분출했다. 중앙일보가 교보문고와 함께 ‘2014 올해의 좋은 책 10’을 선정했다. 인문·사회·경제경영·과학·문학 등 분야별 필독서를 골랐다. 2015년 을미년(乙未年)을 열어가는 나침반으로 삼을 만하다.

중앙일보 출판·문학·학술팀 

소설
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창비, 370쪽, 1만2000원

한때 ‘자살대교’라 불렸던 한강 마포대교에서 형제는 맞닥뜨렸다. 투명인간이라 자처하는 둘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형 만수와 아우 석수는 어쩌다 투명인간이 됐을까. 투명인간들이 끼리끼리 노니는 얘기 속에 이미 작가는 단서를 깔기 시작한다.

 196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한국 현대사 50년 세월에 스러져간 모든 ‘을(乙)’에게 바치는 만가(輓歌)랄까. 진양조로 퍼지는 애도소리가 주거니 받거니 가족들 목격담으로 이어진다. 만수 엄마, 만수 할머니, 만수 할아버지…, 그런 식으로 자기 관점에서 만수를 둘러싼 회상을 풀어놓으니 이야기가 구성지다. 무대에 선 배우처럼, 기록필름에 등장하는 제보자처럼, 조명이 비추고 카메라가 돌아가는 시점에서 하나의 가족사가 다면체로 모양을 빚어간다.

 작가는 “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 (…)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써서 보여줄 뿐”이라고 말한다. ‘함께’는 뜨거우면서 힘 있는 단어다. 부사 ‘함께’에 가장 근접한 명사는 가족이다. 만수 아버지가 토하는 가족론은 비장하다.

 “식구는 너의 분신이고 너의 뿌리이고 울타리이다. (…) 식구가 죽으면 네가 죽는 것이다.”

 3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난 만수는 세상 기준으로 보면 좀 모자란 축에 드는 인물이지만 김씨 가문에서 부친의 가족론을 가장 우직하게 실천한다. ‘함께’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 세밑에 모든 투명인간에게 보내는 희망의 전언은 인류가 왜 아직 이야기로부터 젖을 떼지 못하는가, 끄덕이게 한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소설
현기증. 감정들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문학동네, 268쪽, 1만2000원

국내에는 아직 낯설지만 소설가 제발트(1944∼2001)는 생전 노벨상 후보로 꼽혔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세익스피어·디킨스와 동급에 놓기도 했다. 작품 세계를 압축 표현하기 위해 작가 이름의 형용사형 어휘가 생겨났다는 점에서다. ‘제발트적인’을 뜻하는 형용사 ‘제발디언(Sebadlian)’이 통용되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제발트적인’이 ‘분류되기를 체계적으로 거부하는’쯤의 뜻으로 쓰인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은 소설도, 역사서도, 그렇다고 여행 수필도 아니다. 『현기증. 감정들』이 딱 그렇다.

책은 1990년에 발표한 첫 소설(편의상 소설로 지칭)이다. 스탕달의 1813년 북부 이탈리아 여행과 카프카의 1913년 같은 지역 여행을 각각 추적한 단편 두 편, 제발트 자신의 1980·87년 두 차례에 걸친 역시 같은 장소로의 여행을 다룬 중편 두 편을 묶었다.

당연히 네 편을 관통하는 하나의 줄거리는 없다. 대신 현기증이나 불안·공포 등에 시달리는 인물 내면이 부각된다. 제발트는, 여행은 고정된 사회적 정체성에서 탈출해 자아 혼란을 체험하기 위한 것이라는 양 낯선 시공간을 쏘다니며 당황하고 좌절한다. 스탕달·카프카의 이탈리아 여행과 관련된 잡동사니 일화, 100년 전 신문의 쪼가리 뉴스 등 오래된 동전처럼 빛나는 사실들의 더미를 촘촘하게 쌓아 올려 묘한 읽는 맛을 선사한다. 사소해서 흥미롭고 낯설어 매혹적인 산문의 재미를 원한다면 도전할 만하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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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돌베개, 280쪽, 1만3000원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1919~87)가 말년에 쓴 에세이다. 수용소 경험을 바탕으로 나치의 폭력성과 그 앞에서 추락하는 인간의 민낯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수용소 탈출 직후 집필한 『이것이 인간인가』가 문학적 필치를 가미한 수기에 가깝다면, 그로부터 40년 후에 쓴 『가라앉은 자…』는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구조를 관찰자의 시선으로 보다 엄밀하게 분석했다.

 이 책이 증언문학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이유는 2장의 ‘회색지대’ 때문이다. 회색지대는 나치 당국에 협력한 생환자의 세계다. 가스실로 가지 않기 위해, 죽 한 그릇을 더 먹기 위해 일부는 나치의 앞잡이 노릇을 자처했다. 레비는 바로 이들이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자(구조된 자)고, 음식을 양보하고 폭력에 대항한 선한 자는 모두 죽었다(가라앉은 자)고 썼다. 레비는 살아돌아왔지만 살아남은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다.

 사람들은 그에게 물었다. “왜 수용소에서 자살하지 않았냐”고. 하지만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인간’뿐이다. 지옥에서 생사의 경계는 무의미하다. 그는 이 책을 쓰고 1년 뒤 이탈리아 토리노의 자택에서 자살했다. 자신의 인간적 수치심을 증명하듯 말이다. 그는 아우슈비츠가 점점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다는 위기감으로 이 책을 썼다. 학살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비극은 영원히 기억되어야 한다. 86년 출간된 이 책을 더 빨리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김효은 기자

실용
킨포크(kinfolk) vol.1
킨포크매거진 지음, 김미란·최다인 옮김
책읽는수요일, 133쪽, 1만4500원

소박하고 단순한 삶, 따로 또 함께하는 즐거움…. 잡지 ‘킨포크(kinfolk)’가 추구하는 가치다. 2011년 미국 포틀랜드 지역 예술가들이 창간한 이 잡지는 국내에 소개되기 전부터 젊은 디자이너나 예술가들 사이에 화제였고, 올해 4월 번역판이 출간되자마자 ‘킨포크족(族)’이라는 말을 만들어내며 인기를 모았다. ‘킨포크’는 원래 ‘친족이나 일가, 가까운 사람’을 뜻하는 단어. ‘킨포크족’은 킨포크가 소개하는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사람들, 특히 친하거나 낯선 이들을 초대해 ‘소셜 다이닝(social dining)’을 즐기는 이들을 일컫는다. 1~7호는 책읽는수요일이 펴냈으며, 8호부터는 디자인이음이 발행하고 있다.

 1호는 ‘홀로’ ‘둘이서’ ‘그리고 여럿이’를 주제로 농부·사진가·디자이너·뮤지션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을 소개한다. 혼자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물론 여럿이 함께하는 식사를 요리법과 함께 소개한다. 꽃꽂이 방법이나 파티 준비 팁도 알려준다. 무엇보다 감성적인 사진과 절제된 글, 여백이 살아있는 편집으로 ‘소박하지만 (약간의 허세가 가미된) 세련된 취향’을 동경하는 독자들을 만족시켰다. 창간호는 국내에서 약 1만5000부 판매됐다.

 ‘킨포크’의 인기로 비슷한 분위기의 잡지도 잇따라 소개되고 있다. 한국의 ‘킨포크’를 표방한 ‘더 노크 밥’(윌북)이 11월 창간됐으며, 여행과 음식,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영국 잡지 ‘시리얼(Cereal)’ 한국어판도 최근 발행됐다.

이영희 기자

어린이
엄마는 회사에서 내 생각 해?
김영진 글·그림
길벗어린이, 36쪽, 1만1000원

워킹맘에겐 월요병도 사치다.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늑장 부리는 아이 마음을 모른 체하고 채근해 유치원에 데려간다. 지각하지 않으려고 달음질쳐 만원 지하철에 겨우 탄다. 한숨 돌리고 나니 문득 유치원에 밀어 넣다시피 헤어진 아이가 눈에 밟힌다. 유치원에 오도카니 제일 먼저 도착한 아이는 친한 친구의 등장으로 이내 웃음을 찾는다. 급식을 맛있게 먹으며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어진다. 엄마는 점심 때 스파게티를 먹으며 ‘주말에 아이에게 해 줘야지’ 생각한다.

그림책은 이렇게 왼쪽은 엄마의 회사 생활, 오른쪽은 아이의 유치원 생활을 병치해 보여준다. 각자의 생활 공간에 몰입하지만 마음은 연결돼 있다. 아이의 세계는 아직 손에 잡힐 듯 단순한데, 엄마는 아이가 모르는 또 다른 곳을 향해서도 달려가고 있으니 야속할 법도 하다. 그림책을 함께 읽으며 부모와 아이는 서로의 생활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안도할 거다. 책 마지막 장처럼 “엄마는 회사에서 뭐 했어?” “엄마? 우리 은비 생각했지!” 하면서.

  교보문고에서 올해 유통된 어린이 신간 중 가장 반응이 좋았던 책이다. 책을 샀을 수많은 엄마들의, 부모들의 마음이 애달프다. 이 책의 반응이 예전같지 않을 때면 더 많은 아이들이 태어날까. 영유아들에게조차 리얼리티 충실한 그림책으로 현실을 이해시키지 않아도 될 때, 아니면 적어도 “아빠도 회사에서 네 생각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때 말이다.

권근영 기자  

인문·사회
세상물정의 사회학
노명우 지음
사계절, 308쪽, 1만6800원

“당신의 삶은 세계의 사건 중 한 조각이 아니라 세계의 사건 전체다.” 물리학자 슈뢰딩거의 말이다.

 『세상물정의 사회학』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렇다. 세속을 사는 우리들의 삶은 그저 세상의 한 조각이 아니라 세상 전체다. 사회를 연구하는 사회학자는 드높은 상아탑에서 걸어 내려와 사회의 전부인 개인을 샅샅이 들여다봐야 한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 봤다. 그가 지난해 펴내 호평받은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는 그 첫 결과물이었다. 싱글남인 그가 1인가구라는 새로운 사회 트렌드에 대해 쓴 자전적 보고서다. 독신을 비정상으로 규정해온 한국 사회에 대한 관찰기이기도 했다.

 이 책은 여기서 더 나아갔다. 상아탑에 갇혀 세상물정 모르는 학자가 세속으로 걸어나와 세상살이의 사회학을 얘기하는 책이다. 명품·여행·성공·섹스·취미·자살·게으름·가정·인정·죽음에서 개인·노동·언론·종교·기업 등 우리 삶을 규정하는 온갖 주제를 불러들였다. 이론을 파고 들어 지식을 과시하거나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외면한 채 오직 사회학을 위한 사회학에 매몰됐던 기존 연구와 거리를 뒀다. 일상을 사회학적으로 고찰하는 새로운 지적 흐름에 더하여, 스스로를 세속인으로 규정하며 자기 목소리를 들려준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에필로그 제목은 ‘사회로부터 고립당할 위험에 처한 사회학자의 고백’. 사회학이 어떻게 세상과 만나야 하는지 보여준 흥미로운 저작이다.

양성희 기자

인문·사회
작가란 무엇인가
파리 리뷰 지음, 권승혁·김진아 옮김
다른, 496쪽, 2만2000원

소설가는 건축가다. 인간과 세상, 그리고 우주를 읽고서 자신의 집을 짓는다. 작가마다 다르다. 건축 재료도 다르고, 건축 양식도 다르다.

 미국의 문학잡지 ‘파리 리뷰’는 작가 인터뷰로 유명하다. 소설가 김연수는 30대 초반에 우연히 이 잡지의 인터뷰를 읽고서 “그제야 나는 내가 되고자 하는 소설가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파리 리뷰’는 지난 60년간 세계적 명성의 작가 250여 명을 인터뷰했다. 그중 12명의 인터뷰를 추려서 이 책을 엮었다. 국내 문예창작학과 대학생 100명이 ‘가장 만나고 싶은 작가’로 꼽은 이들이다. 책을 읽다 보면 작가들이 왜, 어떤 감정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자신의 집을 짓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가장 만나고 싶은 작가 1위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글 쓰는 시간이 즐거운가?”라는 기자의 첫 질문에 헤밍웨이는 “무척이오”라고 답했다. 창작은 고통이다. 그는 고통보다 즐거움의 무게가 더 크다고 답을 한 거다. 인터뷰에서 던진 작가의 이 한 마디가 치밀한 논리와 현란한 수사로 무장한 문학비평식 작가론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제가 글을 쓰지만 저 자신도 누가 범인인지 모른다. (…)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 글을 쓴다”고 말했다. 독자에게 소설 읽기는 무언가 찾기 위한 여정이듯, 소설가에게 글쓰기도 찾기 위한 여정이라고 하루키는 답한다. 이 책은 기자의 질문과 작가의 입을 통해 풀어가는 생기 넘치는 작가론이다.

백성호 기자

경제·경영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옮김
글항아리, 820쪽, 3만3000원

“부의 분배는 매우 중요한 문제여서 경제학자, 사회학자, 철학자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

 토마 피케티(43)가 이 책의 서문에서 한 말이다. 피케티는 부의 분배에 관한 지적·정치적 토론이 그동안 부족한 사실과 편견을 바탕으로 진행돼 왔다며 분배 문제를 다시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2014년은 피케티 열풍이 하나의 글로벌 현상으로 떠올랐던 한 해다. 프랑스 출신의 소장 경제학자가 역사적·경제학적 데이터를 파고들어 불평등의 진화를 추적하고 소득과 부의 분배 문제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지은이가 이 책의 논리를 전체적으로 요약했다고 밝힌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자본수익률(r) > 경제성장률(g)’이라는 공식이다. 상속재산 등 자본이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생산이나 소득보다 더 빠르게 늘어나기 때문에 양극화와 근본적인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주장이다. 피케티는 세계화된 21세기 세습 자본주의를 통제할 수단으로 글로벌 자본세를 제안했다. 최상위 고소득층에 높은 누진소득세를 물리고, 각국 부자에게 부유세를 부과하자는 내용이다.

  학자들의 찬·반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책의 가치는 바로 이 점에 있다. 피케티는 부의 재분배 문제를 우리 시대가 직면한 새로운 도전과제임을 일깨우고 불평등 악화를 억제하기 위해 민주주의 사회가 이뤄야 할 과업이 무엇인지 토론하도록 물꼬를 터놓았다. 21세기 자본 담론의 새로운 전기를 연 것이다.

이은주 기자

경제·경영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 496쪽, 1만6800원

경제학에 ‘손톱만큼의 관심’은 있지만 경제학은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이 책을 쓸 때 머릿속에 그린 독자다. 그의 전작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자본주의 시스템의 작동 양상을 쉽게 설명했다면, 이 책은 일반인을 위한 경제학 사용설명서를 표방한다. 경제학의 개념부터 생산·금융·불평등과 빈곤·일과 실업·정부의 역할까지 파헤친다. 『그들이…』에 이어 장 교수가 해온 ‘경제학 신화 벗기기’ 작업의 테두리 안에 있는 책이다.

 예컨대 지은이는 여러 경제학파가 어떻게 다른지를 소개하며 이들을 경제학을 ‘하는’ 다양한 방법일 뿐이라고 말한다. 기술적 개념과 건조한 숫자가 가치 중립적일 것이라는 착각을 버리라는 메시지다. 경제학의 허점도 숨김없이 들춰낸다. 대부분의 경제학적 논의에서는 사람을 노동자가 아닌 소비자로 규정하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현실에서 일 자체가 갖는 가치와 영향이 지대한데 반해 이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 태도가 우리 경제와 사회가 운영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이 책은 경제 현상을 두루 짚는 동시에 경제학을 훌쩍 넘어서는 책이다. 경제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 못잖게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운다. 과학이라는 포장을 씌워 정치적 주장을 하고 있는 경제학자들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도 선명하다. 고등학생부터 회사원까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고 토론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이은주 기자

과학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1408쪽, 6만원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20세기를 “폭력의 세기”라 했고,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21세기를 “폭력의 시대”로 명명했다. 저명한 학자의 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세계는 폭력으로 얼룩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일만 봐도 파키스탄에서 학생들이 학살됐고, 호주에서 어처구니없는 테러가 일어났다.

 그런데 인지과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손꼽히는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는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인류가 출현한 이래 현재까지 폭력이 급격히 감소해 왔다는 것이다. 그는 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의 연구 성과와 수많은 통계를 바탕으로 폭력 감소 현상을 무려 1000쪽 넘는 분량으로 촘촘히 입증한다.

 책은 낭만적으로만 그려왔던 중세·고대의 인류가 얼마나 끔찍한 폭력에 일상적으로 노출됐는지 묘사한다.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난 건 말할 것도 없고 가족·마을 등 일상의 영역에서도 폭력은 흔한 레퍼토리였다. 인류 역사에서 최근을 제외하고는, 보통 사람들은 언제 죽을까 벌벌 떨며 살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저자는 인류의 본성에 복수심·가학성 등 악마가 내재돼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자기 통제나 도덕 감각 같은 천사도 공존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다만 천사가 악마를 누를 수 있는 여러 조건들이 인류의 역사에서 차츰 형성돼 왔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더 평화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도 제시한다.

이정봉 기자

●어떻게 선정했나 ‘2014 올해의 좋은 책 10’ 선정에는 중앙일보 출판·문학·학술팀과 교보문고 도서추천 전문가 북마스터 18명이 함께 참여했다. 우선 교보문고 북마스터가 2013년 12월 이후 출간작을 대상으로 예비 도서 120종을 고르고, 본지와 교보문고의 토론을 거쳐 후보 도서를 압축했다. 최종 선정에는 출판 전문가 9명의 자문과 추천도 반영했다. 시대의 주요 화두를 담아내고, 탄탄한 콘텐트로 완성도를 높이고, 편집·글쓰기에서 대중성을 갖췄는가에 초점을 맞춰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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