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 파문 등 고비 때마다 뒷짐 … '초식정당' 새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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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으로 따진다면 있으나 마나 한 동료, 파트너라고 한다면 참 손발이 안 맞는 짝꿍이었다. 새누리당 얘기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에선 대선승리 2주년을 하루 앞둔 18일 환호도 각오도 없었다. 6·4 지방선거와 7·30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선전하는 등 수치로 드러나는 실적은 괜찮았다. 하지만 결정적인 고비고비에서 새누리당은 ‘초식정당’ 소리를 들을 만큼 존재감이 없었다. 문창극 총리후보자가 내정됐을 당시 근거 없는 공세를 구경만 하다가 뒤늦게 여론에 편승했는가 하면, 공무원연금 개혁안 등 주요 국정과제를 놓고는 정부에만 ‘악역’을 떠넘겼다. 158석을 지녔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청와대 뒤에 숨는 바람에 화살은 온통 청와대로만 향했다. ‘정윤회 문건’ 파문은 그 결정판이었다. 그러다 보니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대 아래로 밀린 최근 여론조사에선 당의 지지율도 함께 떨어졌다.

 김무성(사진)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자성론부터 펴야 했다. 김 대표는 “2년 전 우리는 1987년 이후 처음으로 과반 이상의 지지를 얻어 박근혜 정부를 출범시키고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며 “그러나 지금 이 약속을 잘 지키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고 경제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겸허히 반성하고 잘못된 관행과 제도와 조직은 과감히 고치겠다”고 했다.

 김 대표의 발언에서도 암시했지만 당 안팎에선 “여당이 여당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김 대표부터가 그렇다. 그는 7·14 전대에서 당선된 직후 “청와대에 대해서도 할 말은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지난 10월 상하이 개헌 발언으로 박 대통령으로부터 직격탄을 맞은 뒤 움츠러들었다. 문건 유출 논란 속에서도 말을 아꼈다. 한 소장파 의원은 “요즘 김 대표를 보면 ‘무대’(무성대장의 줄인 말)답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할 말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물론 김 대표 주변에선 “아직은 대통령 지지율이 당 지지율을 떠받치는 가장 큰 기둥이니 어쩔 수 없다”는 자조론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계속될 경우 집권당의 존재감이 갈수록 작아진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당정분리라는 틀에 맞춘 집권당의 새 역할 정립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정당은 통치 과정의 매우 중요한 존재다. 박정희 대통령 때의 공화당, 전두환 대통령 때의 민정당도 정책 수립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그러나 당정분리 이후 여당이 국정 운영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정당의 장점은 민심을 신속히 수렴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여당이 민심을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대통령은 혼자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여당은 대통령에 대해 건전한 긴장관계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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