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영화] 탐욕스러운 인간아, 네 뒤에 좀비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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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 오브 데드'에서 좀비는 이미 놀잇감이나 사격연습용으로 쓸 만큼 익숙한 존재가 됐다.

좀비의 공격을 막기 위해 고압선을 둘러친 도시 안은 극단적으로 나뉜다. 대부분은 빈민처럼 살아가는 반면 도시의 모든 것을 장악한 권력자 카우프만(데니스 퀘이드)의 호화 아파트에선 놀랄 만큼 풍요로운 부자들의 일상이 지속된다. 좀비가 장악한 지역에서 일상용품을 구해오는 보급부대원 라일리(사이먼 베이커)는 이 모든 갈등을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한다. 반면 또 다른 보급부대원 촐로(존 레귀자모)는 카우프만의 수족 노릇을 하며 모은 돈으로 호화 아파트에 입주하려다 거절당하자 앙심을 품는다. 수백만 달러를 내놓지 않으면 보급부대의 미사일로 도시를 공격하겠다고 위협을 하는 것이다. 라일리는 도시를 구하기 위해 촐로를 추격하는 한편, 어느새 의사소통과 학습능력을 갖추고 도시로 진격해오는 좀비 일당에도 맞서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후남 기자

주연:사이먼 베이커·존 레귀자모·데니스 퀘이드
장르:공포·액션·스릴러
등급:18세
홈페이지:(www.landofthedeadmovie.net)
20자평:진화하는 좀비, 더 끔찍한 건 멈추지 않는 인간의 탐욕.

좀비의 시원은 미국영화에도 자주 등장했던 부두교의 주술이다. 정말로 시체를 깨어나게 하는 것은 아니고, 약으로 가사상태에 빠뜨려 죽은 것처럼 보이게 한 뒤 무덤에서 파내 노예로 쓰는 주술이다. '화이트 좀비'(1932) '나는 좀비와 걸었다'(1943) 등 초기 좀비 영화는 인간성과 의식이 박탈된 시체 같은 존재를 좀비라고 칭했다.

'좀비의 왕'(1941) '좀비의 역병'(1966) 등에서 점차 초자연적인 괴물로 발전해가던 좀비는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에서 공포영화의 캐릭터로 정형화된다. 로메로는 이후 '시체들의 새벽'(1978년) '죽음의 날'(1985년)로 이어지는 좀비 3부작에서 좀비영화의 모든 전형을 고안해냈다. 좀비들은 어기적거리며 걸어다니고, 뇌가 파괴되거나 불타지 않는 한 살육을 멈추지 않는다. 좀비의 식량은 인간이고, 좀비에 물린 인간은 일단 죽었다가 좀비로 깨어난다.

좀비가 무적인 이유는, 막강한 물리적 힘 때문이 아니라 이렇게 끊임없이 숫자를 늘려가기 때문이다. 좀비가 무서운 것은 어떤 대화도 불가능한 비이성적인 집단이기 때문이다. 살점을 뜯어먹는 이 잔인한 살육자는 십자가로 퇴치할 수도 없고, 제물로 대신할 수도 없다. 최후의 인간까지 잡아먹히지 않는 한 좀비는 포기하지 않는다. 잔인한 장면이 많은 좀비 영화가 서구에서 유독 인기를 얻은 데는 종교적인 이유도 있다. 종말의 날에 시체들이 깨어난다는 계시록의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좀비의 출현은 곧 종말의 예고다. 인간의 패배는 이미 결정된 것이고, 천년왕국이 도래하기 전까지 지상에 남은 모든 인간은 죽음을 맞이해야만 한다.

조지 로메로가 거장으로 추앙받는 이유가 있다. 좀비 영화에 정치적 의미까지 분명하게 부여한 까닭이다. '시체들의 새벽'에서 좀비들은 쇼핑센터로 몰려든다. 살아있을 때의 습관을 반복하는 이 모습은 대량소비의 물결에서 허우적거리는 현대인을 보는 것만 같다. 한편 폭주족들이 무참하게 좀비를 박살내고 괴롭히는 모습에서는 현대인이 얼마나 가련한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자신의 주관도 없이 선전선동과 광고에 휘둘리고, 끝내는 국가정책과 폭력범죄의 희생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좀비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는 정확히 나오지 않는다. 초기의 좀비 영화에서는 부두교의 주술이거나 미친 과학자, 또는 나치의 음모로도 나온다. 정부기관에서 전쟁무기로 만들고 관리하는 좀비를 등장시킨 시리즈도 있다. 하지만 좀비를 이런 '괴물'로만 취급하는 것은 그저 살육과 잔혹한 장면을 위한 것이다.

로메로는 '죽음의 날'에서 좀비에게 학습능력을 준다. 좀비를 악령이 아니라, 자연에 돌연히 나타난 또 하나의 종으로 본 것이다. 인간 아니 자연에 대한 신뢰라고나 할까. 신작 ' 랜드 오브 데드'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좀비를 일종의 '야만인'으로 본다. 개화되거나 사라져야 했던 근대의 야만인처럼, 좀비란 존재를 해석하는 것이다.

'랜드 오브 데드'는 좀비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태도를 선보인다. 근래의 좀비 영화 '새벽의 저주'(2004년)는 스펙터클을 위해 좀비를 뛰어다니게 했지만, 조지 로메로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70년대의 어기적거리며 걷는 좀비 스타일을 태연하게 재현하면서, 정치적인 풍자와 주장을 매끄럽게 선사한다. '28일 후'에서 인간의 본능적인 분노가 세상을 파괴한 것처럼, 로메로의 좀비 영화에선 '욕망'이 모든 것을 파괴한다. 좀비의 식탐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이 종말을 이끈다고 말하는 것이다.

김봉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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